앤디 워홀은 20세기 미국 미술의 아이콘이다. 생전에 부와 명성을 모두 누린 가장 성공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영국 여왕처럼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하필 영국 여왕이었을까?
1985년 워홀은 ‘군림하는 여왕들’이란 제목의 작품을 제작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 은톰비 에스와티니 여왕 등 당시 여성 군주 네 명의 초상화 연작이었다. 원래 워홀은 매릴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다. 해서 명사들의 삶에 관심이 큰 것 같지만, 실은 그 자신이 스타가 되고 싶어 했다. 그중에서도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같은 명성을 갖고 싶어 했다. 최고의 신분과 품위, 세계적 명성, 화려함과 부유함 등이 부러웠을 터다. 워홀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명사들의 사진을 종종 작품에 이용했는데, 이 판화의 바탕도 피터 그루전이 1975년에 찍은 여왕의 은혼식 기념 공식 초상 사진이다.
여왕이 갖는 상징적 이미지의 힘에 매료된 워홀은 평소 사용하던 정사각형 형태 대신 영국 우표를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으로 제작했다. 4점 세트로 된 초상화는 바탕색이 각각 보라, 파랑, 자주, 분홍색인데, 그중 분홍색 그림이 가장 화려하다. 여왕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해 워홀은 ‘로열 에디션’ 30점을 추가로 제작하면서 그림에 다이아몬드 가루까지 뿌렸다. 가장 빛나고 화려한 여왕의 이미지가 완성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워홀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2012년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로열 에디션’ 초상화 4점을 구입했다. 그녀가 소유한 본인 초상화 중 직접 포즈를 취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었다. 96세까지 천수를 다한 여왕과 달리 워홀은 1987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여왕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던 소망은 이루었다. 영원한 팝아트의 황제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