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미술사는 오랫동안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역사에서 잊힌 여성 미술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나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럼에도 백인 여성 화가 위주였지 유색인 조각가는 또 한번 배제되기 일쑤였다.
오거스타 새비지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조각가다. 1939년 미국에 자신의 미술관을 세운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었고, 뉴욕 세계박람회가 1939년 행사를 위해 작품을 의뢰한 유일한 흑인 여성 예술가였다. 새비지는 흑인 어린이 합창단을 하프 모양으로 형상화한 석고 조각을 선보였다. 제임스 웰던 존슨이 쓴 시 ‘모든 목소리를 높이고 노래하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이 시는 1900년 500명의 학생들에 의해 처음 낭송된 뒤, 곡으로 만들어져 미국 흑인 사회에서 국가처럼 불리며 사랑받았다. 차별 없는 세상과 자유를 향한 투쟁의 의지가 담긴 노래이기도 하다.
사실 새비지의 인생 역시 투쟁의 연속이었다. 프랑스 미술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합격했지만 피부색 때문에 장학금이 철회돼 조각 공부를 이어가지 못했다. 조각가로 인정받았지만 늘 가난했다. 작품을 청동으로 주조할 돈이 없어 석고 조각을 청동처럼 보이도록 구두약을 칠할 정도였다.
4.8m 높이의 석고 조각 ‘하프’(1939년)는 행사 기간 동안 수많은 미니어처 복제품(사진)과 엽서로 제작돼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그러나 박람회가 끝나자마자 원본은 파괴되었다. 행사를 위해 제작된 임시 설치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새비지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21세기 들어 활발해졌다. 2001년 그의 집과 작업실이 뉴욕주의 역사적 장소로 등재됐고, 2004년 그의 이름을 딴 공립예술학교가 문을 열었다. 2019년 ‘르네상스 여성’이란 제목으로 열린 뉴욕 회고전에 이어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돼 그의 이름을 세상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