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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없다 되뇌이며 맹훈련… 절실함의 힘으로 막아내겠다”

“다음은 없다 되뇌이며 맹훈련… 절실함의 힘으로 막아내겠다”

Posted May. 25, 2023 07:54   

Updated May. 25, 20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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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절실해진다. 지금 내가 그렇다.”

최근 인천 서구 현대제철 종합운동장에서 만난 골키퍼 김정미(39·현대제철)에게 7월 20일부터 열리는 2023년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각오를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김정미는 한국 여자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세였던 2003년 6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선수권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한 뒤 20년 동안 A매치(국가대항전) 135경기를 소화했다. 지소연(32·수원FC 위민), 조소현(35·토트넘 위민)의 144경기 출전 다음으로 많다. 2003년 미국, 2015년 캐나다 월드컵에서도 주전 수문장으로 출전했다.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은 김정미의 마지막 월드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정미는 “콜린 벨 대표팀 감독은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나이 많은 선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FIFA 여자축구 랭킹 17위인 한국은 독일(2위), 콜롬비아(26위), 모로코(73위)와 H조에 속해 있다. 역대 최고 성적인 2015년 대회 16강 이상을 노리고 있다.

김정미를 얘기할 때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여자축구 강호인 북한을 상대로 1승 3무 15패로 열세다. 2005년 동아시아연맹컵에서 1-0으로 이긴 것이 유일한 승리다. 당시 김정미는 골키퍼 장갑을 끼고 ‘클린시트(무실점)’를 작성했다. 그 뒤 김정미는 북한이 꺼리는 선수가 됐다. 2017년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에서 북한 관계자들은 한국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김정미 골키퍼 너무 오래하는 것 아니냐. 언제까지 출전시킬 것이냐”며 부담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정미는 2016년 골키퍼로는 남녀 최초로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에도 뽑혔다. 2004년 현대제철 유니폼을 입은 김정미는 지난해 소속팀의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10연패에 기여하기도 했다. WK리그 현역 최고령 선수인 김정미는 변함없는 활약의 비결로 “지도자들의 조언을 잘 들은 덕”이라고 했다. 김정미는 “선수들이 젊을 땐 회복에 도움이 되는 준비, 보강, 마무리 운동 등에 소홀하기 쉽다. 나는 이런 기본적인 운동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며 “사소한 조언도 내 것으로 만들면서 좋은 쪽으로 쌓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미는 2019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다. 월드컵 출전은 무산됐고, 은퇴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도자들의 조언에 따라 웨이트 훈련을 통해 근력 보강에 집중했다. 김정미는 “부상에서 돌아왔는데, 코치님들이 ‘킥이 더 좋아졌다’고 칭찬해줬다. 은퇴라는 단어를 지우고 4년을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대표팀 붙박이 골키퍼인 김정미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윤영글(36·스웨덴 헤켄)과 주전 수문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지난달 국내에서 치른 잠비아와의 A매치 2경기에서 김정미와 윤영글은 1경기씩 골키퍼 장갑을 꼈다. 김정미는 “벨 감독님이 대표팀 내 경쟁 분위기를 선수들이 불쾌하지 않을 만큼 잘 조성한다”며 “경쟁이라기보단 선수들이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하면서 팀에 시너지가 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절실함’이란 단어를 다시 꺼낸 김정미는 “절실해지면 훈련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다음’이 없다는 생각으로 평소라면 포기했을 훈련도 다 소화한다. 이런 절실함이 팀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