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가져왔으니 갈 때도 아무것도 안 가져가도 되겠지요. 지금 제겐 점심, 저녁 흰 쌀밥 두 그릇이면 충분합니다. 당뇨가 있어서 가끔은 한 그릇만 먹기도 해요.”
배우 저우룬파(주윤발·68)는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저우룬파는 전날 개막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2018년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당시 810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그는 휴대전화 하나를 17년 동안 사용하고, 슬리퍼 차림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등 검소하게 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제가 아니라 아내가 기부했다. 저는 힘들게 번 돈이라 기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용돈을 받아 생활해야 한다”고 농담하며 울상을 짓자 장내엔 폭소가 터졌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저우룬파는 BIFF에서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라는 특별 기획프로그램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영웅본색’(1986년) ‘와호장룡’(2000년)과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다음 달 개봉하는 ‘원 모어 찬스’까지 3편을 상영한다. 코미디 가족 영화인 ‘원 모어 찬스’에서 그는 마카오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발의 홀아비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키우는 아빠 역을 맡았다. 그의 코미디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반가울 작품이다. 그는 “이런 장르를 안 한 지 오래돼서 저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영화다. 부자지간의 정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50년을 배우로 살았지만 그는 톱스타라는 자만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이 초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것은 환상이고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라는 불학(佛學)의 개념을 믿는다. ‘현재에 살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특별한 시선으로 제가 슈퍼스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다만 연기에 대한 깊은 사랑과 욕심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영화가 없으면 저우룬파도 없다”며 “저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제게 큰 세상을 가져다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가 영화를 50년 더 찍으면 볼 사람들이 있을까요”라고 되묻고는 “한국에 자주 와서 미용 시술을 받아야겠다”며 웃었다.
침체된 홍콩 영화계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검열이 있어서 홍콩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창작의 자유가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7월 제기됐던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부산에 와서 아침에 이틀 연속 러닝을 했고 내일 오전에도 10㎞를 뛸 것”이라며 루머를 불식했다.
중국 배우 판빙빙(42)도 복귀작 ‘녹야’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판빙빙은 2018년 탈세 논란에 휩싸인 뒤 돌연 자취를 감춰 사망설, 실종설이 제기됐다. 중국 당국은 그에게 약 8억830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이후 5년간은 공백기였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인간의 생명 주기처럼 삶에도 기복이 있다. 스스로를 침착하게 가라앉히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판빙빙은 ‘녹야’로 연기 변신을 꾀했다. 그동안 해왔던 당차고 진취적인 여성과는 달리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역을 맡았다. 그가 연기하는 ‘진샤’는 인천 여객항 보안검색대에서 근무하는 여성으로, 남편(김영호)의 폭력에 무력감을 느끼다 자유로운 초록머리 여자(이주영)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슈아이 감독이 연출했고, 한국에서 촬영했다. 올해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