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34)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최종전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4년 9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양희영은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 골드코스(파72)에서 열린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로 6타를 줄였다. 최종 합계 27언더파 261타를 기록한 양희영은 공동 2위 하타오카 나사(일본), 앨리슨 리(미국)를 3타 차로 여유 있게 제치고 우승 상금 200만 달러(약 25억8000만 원)를 받았다. 양희영이 투어에서 우승한 건 2019년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 이후 처음이다.
투어 16년 차 베테랑 양희영은 이번 우승으로 통산 5승째를 거뒀는데 미국에서 열린 대회 정상을 밟은 건 처음이다. 그동안엔 2013년 한국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한 차례 우승했고, 나머지 세 번의 우승은 모두 태국에서 개최된 혼다 LPGA 타일랜드(2015, 2017, 2019년)에서 따냈다. 2008년 LPGA투어에 데뷔한 양희영은 좋은 신체조건과 부드러운 스윙을 가져 ‘제2의 박세리’가 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LPGA투어 본고장인 미국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상위 랭커들이 일부 불참한 대회에서 주로 우승하면서 그는 실력에 비해 대우를 받지 못했다. 2019년 우승 당시에도 메인 스폰서가 없어 민무늬 모자를 쓰고 대회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를 하타오카와 공동 선두로 시작한 양희영은 전반에 하타오카에게 1타 뒤진 2위로 처졌다. 하지만 13번홀(파4) 이글로 단숨에 분위기를 바꿨다. 80야드를 남기고 58도 웨지로 친 두 번째 샷은 핀을 살짝 지나친 뒤 백스핀을 먹고 홀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하타오카가 16번홀(파3)에서 보기를 범하는 사이 양희영은 17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양희영은 마지막 18번홀(파4)에서도 버디를 성공시키며 우승을 자축했다.
올해도 양희영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취미인 암벽 등반을 하다가 팔꿈치를 다쳤다. 부상은 부진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번 대회 후 LPGA투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골프를 해오면서 기복이 있었지만 이번 시즌처럼 은퇴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다”며 “하지만 가족 같은 코치와 캐디의 도움으로 난관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이번 대회에 쓰고 나온 모자에도 나타났다. 양희영은 “메인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자 앞면을 비어 있는 채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소 모양을 수놓았다”고 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낸 양희영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자”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시즌 최종전인 이번 대회를 끝으로 올해 각 부문 수상자도 모두 결정됐다. 메이저 대회 2승을 포함해 시즌 4승을 거두며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릴리아 부(미국)는 이번 대회를 4위(21언더파 267타)로 마치며 ‘올해의 선수상’과 상금왕(350만2303달러)을 차지했다. 베어트로피(평균 최저 타수상)에 도전했던 김효주(69.628타)는 아타야 티띠꾼(태국·69.533타)에게 밀려 2위를 했다. 유해란은 신인왕을 차지였다.
한국 선수들은 이번 시즌에 고진영(2승), 유해란, 김효주, 양희영(이상 1승)이 모두 5승을 합작했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