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5·키움)가 아시아 야수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 역대 최고액을 받으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입성한다. 이정후를 품은 팀은 월드시리즈 8회 우승에 빛나는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명문 구단 샌프란시스코다.
MLB닷컴과 애슬레틱 등 미국 현지 매체는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6년 1억1300만 달러(약 1489억 원)짜리 입단 계약에 합의했다”며 “이정후는 1억1300만 달러 전체를 보장받는다. 또 4년 뒤 옵트아웃(구단과 선수 합의로 계약 파기)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선수가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면 바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몸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다만 메디컬 테스트 등 마무리 절차가 남아 있어 샌프란시스코 구단과 이정후 측모두 공식 발표를 하지는 않은 상태다.
이번 계약은 총액과 연평균 금액(1883만 달러·약 248억 원) 모두에서 기존의 예측을 뛰어넘는다. 당초에는 계약 기간 4∼6년에 총액 6000만∼9000만 달러의 계약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이정후는 단숨에 1억 달러 이상의 ‘대박’을 터뜨렸다. 이전까지 MLB에서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따낸 한국 선수는 추신수(41·SSG)뿐이었다. 추신수는 2013년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에 FA 계약을 맺었다.
이전에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진출한 야수 가운데도 1억 달러가 넘는 계약을 따낸 선수는 없었다. 이정후 전까지는 요시다 마사타카(30)가 지난해 보스턴과 5년 9000만 달러(약 1186억 원)에 계약한 게 최고 기록이었다.
2022년 한국프로야구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인 이정후의 정교한 타격 실력은 일찌감치 MLB 팀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정후는 2017년 키움 입단 후 올해까지 7시즌 동안 역대 1위에 해당하는 통산 타율 0.340을 남겼다. 통산 삼진(304개)보다 통산 볼넷(383개)이 많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수준급 수준의 중견수 수비 실력과 젊은 나이 역시 장점으로 꼽혔다. 여기에 뉴욕 양키스와 샌디에이고 등 대형 구단의 영입 경쟁까지 이어지면서 이정후의 몸값이 뛰어올랐다.
올해 7월 발목 부상을 당한 뒤에도 MLB 팀들의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중견수 보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던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에게 적극적으로 ‘러브 콜’을 보냈다. 피트 퍼텔러 샌프란시스코 단장이 10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이정후의 타격을 직접 관찰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정후가 당장 내년부터 샌프란시스코의 주전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에 입단하면서 옛 키움 동료이자 절친한 선배인 김하성(28·샌디에이고)과는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됐다. 이정후의 MLB 데뷔전부터 두 선수가 만날 확률이 높다. 샌프란시스코가 내년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리는 샌디에이고 방문 4연전으로 시즌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두 팀은 4월 6∼8일(샌프란시스코), 9월 7∼9일(샌디에이고), 9월 14∼16일(샌프란시스코)에 걸쳐 총 13차례 맞대결을 벌인다.
이정후는 10년 7억 달러에 LA 다저스에 입단한 오타니 쇼헤이(29)와 ‘미니 한일전’도 치른다. 역시 NL 서부지구 소속인 다저스 역시 샌프란시스코와 한 시즌에 13차례 맞붙는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