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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이유    

Posted February. 15, 2024 07:47   

Updated February. 15, 202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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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스튜어트는 19세기 미국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미국 첫 대통령 6인을 포함해 약 1000명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 많은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건 ‘아테네움’(1796년·사진)이라 불리는 미완성 초상화다. 어째서 미완성 그림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림 속 모델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 바로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이다. 현직 대통령 초상화를 아무나 그릴 수는 없는 법, 미완성인 게 더 의아하다. 스튜어트는 미국 태생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하며 초상화가로 꽤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38세가 되던 1793년 더 큰 성공을 꿈꾸며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다. 당시 큰 존경과 지지를 받던 워싱턴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려 판화로 만들고 그 판화들을 팔아 큰돈을 벌 계획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던가. 1794년 정치인 존 제이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성공한 후, 그의 소개로 이듬해 말 드디어 대통령이 스튜어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림 속 워싱턴은 64세로 타계하기 3년 전 모습이다. 집권 8년 차에 들어선 대통령은 전쟁 영웅도 권력자의 모습도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기품 있는 노신사 같다. 화가는 워싱턴의 얼굴과 목만 묘사하고 나머지는 미완성인 채로 두었다. 그러고는 여러 점의 복제화를 그렸다. 수요는 많았다. 워싱턴 사망 후 130점의 복제화를 제작했고, 점당 100달러에 판매했다. 초상화를 판화로도 만들었는데, 그 이미지는 미국 1달러 지폐는 물론이고 우표에도 새겨져 널리 퍼져 나갔다. 그 덕에 이 초상화가 미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워싱턴의 대표 이미지로 각인됐다.

스튜어트는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미완성 원본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아테네움이란 제목은 그의 사후 그림이 보스턴 아테네움 미술관으로 가면서 붙은 것이다. 목표 이상의 것을 얻은 화가 입장에선 굳이 완성할 필요가 없었을 터. 이 유명한 워싱턴의 초상화가 미완성으로 남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