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을 깨워서 승강장으로 데려갔더니 갑자기 욕설을 하면서 주먹을 날리는 일은 예삿일이죠.”
14년간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지하철 보안관으로 근무하는 김성태 씨(47)는 “최근 강남역에서 불법 촬영하던 사람을 현장에서 적발했는데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20분 동안 난동을 부리는 걸 겨우 제압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매일 700만 명이 넘게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에서 성추행과 불법 촬영 등 지난해에만 3500건이 넘는 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하철 보안관은 체포권을 포함한 사법 권한이 없어 폭행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내 지하철 범죄는 절도, 성추행, 불법 촬영 등을 포함해 총 3546건으로 하루 평균 9.7건이 발생했다. 2021년 2619건, 2022년 3378건에 이어 최근 10년 내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하철 보안관 및 역 직원을 대상으로 한 폭행 피해도 이틀에 한 번꼴로 발생하고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보안관 등을 대상으로 한 폭행 피해는 2021년 204건, 2022년 238건, 지난해 177건 등 매년 100건 넘게 벌어졌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지하철 보안관은 공사 소속 직원이라 신분증 제시 요구권이나 체포권, 수사권 등이 없다”며 “범죄를 적발하더라도 도리어 폭행당하거나 민원, 고소 등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늘어나는 지하철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호주, 네덜란드 등처럼 지하철 보안관에게 사법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하철 보안관에게 사법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서울경찰청 소속 지하철 경찰대와의 업무 중복 우려 등으로 보류돼 왔다. 호주는 철도회사 임원 및 관련 업무 담당자, 고용 보안요원에게 경찰권을 부여했고, 네덜란드 역시 대중교통기관 집행관에게 체포를 포함한 경찰권을 부여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지하철에서 흉기 난동, 성범죄, 불법 촬영 등의 범죄가 늘고 있어 경찰력만으론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지하철 보안관에게도 최소한의 법 집행 권한을 줘서 범법자를 현장에서 제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