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점수보다 성장 따지는 美문화 덕에 성공”

“점수보다 성장 따지는 美문화 덕에 성공”

Posted April. 27, 2024 07:47   

Updated April. 27, 2024 07:47

中文

“공학도는 ‘문제 푸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공학도가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다른 분야와 협력해 해결해야 요즘 같은 기술패권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박아형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새뮤얼리공대 학장은 “기술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된 만큼 공학도들이 좀 더 전면에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문제를 푸는 사람은 결국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보다 한참 뒤에 오게 된다. 이제는 이를 바꿀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박 학장은 한인 여성 최초로 지난해 9월 미국 공대 학장에 선임된 인물이다. 간혹 한국계 미국인이 공대 학장이 된 경우는 있었지만 ‘토종 한국인’이 미국 유수 대학의 공대 학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박 학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수직을 지내다 지난해 9월 UCLA 공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연기, 정유 공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재활용하는 기술인 ‘탄소 포집’을 주로 연구해 왔다.

‘동양 여성’이 공대 학장에 이르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미국은 ‘미, 미, 미(me, me, me)’ 문화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체화돼 있다. 내가 처음 컬럼비아대 교수로 취임했을 때 선배 교수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이 ‘여기선 손이 빨라야 한다(빠르게 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용하고 튀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 풍토 아래 자라온 한국 여성으로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학생이나 교수를 평가할 때 ‘몇 점’이라는 정량적 평가가 아닌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문화 덕분이었다. 지금 당장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서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적극성을 보여 진전이 있다면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박 학장은 “가령 첫 시험에서 90점, 다음 시험에서 또 90점을 받는 학생보다 70점에서 80점으로 발전한 학생을 더 높게 평가한다. 나는 ‘몇 점짜리’ 학생이라는 일종의 ‘주홍글씨’가 없다”고 했다.

한국 공대생들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하자 “이공계는 실험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실패란 늘 따라온다. 이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하면 연구에 발전이 없다. 공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특히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여학도들에게 ‘망가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꼭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