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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봉 뺏고 투표지 찢고… 최저임금 차등적용 또 무산됐다

의사봉 뺏고 투표지 찢고… 최저임금 차등적용 또 무산됐다

Posted July. 04, 2024 08:26   

Updated July. 04, 202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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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 적용하는 안이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의 대립 속에 무산됐다. 노·사·공익위원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그제 제7차 전원회의를 열고 반대 15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구분 적용안을 부결시켰다. 이 과정에서 논의가 격해지면서 고성이 오갔고, 일부 근로자위원이 투표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위원장의 의사봉을 뺏고 투표용지를 찢는 등 투표방해 행위를 해 논란이 됐다.

이날 회의에서 사용자위원(경영계)들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이 약화된 점을 들어 음식점, 택시운송업, 편의점 등에 대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했다. 이에 근로자위원(노동계)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저임금 업종이라는 낙인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3시간 여의 공방 끝에 위원장이 표결을 결정하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이 이를 제지했다. 5월 정부가 새로 위촉한 공익위원들의 성향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표결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국민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정하는 법정 심의기구에서 투표 방해행위가 발생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물리력 행사가 표결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어 표결 결과의 정당성도 훼손됐다. 노사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향후 최저임금 심의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사용자위원들은 오늘 예정된 8차 전원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의 필요성은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업종별 생산성과 사용자의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다보니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으로 한계상황에 몰리게 됐다. 농림어업과 음식·숙박업의 경우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 비율이 30%를 넘는다. 직원보다 못 버는 업주들이 늘면서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노동계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최저임금을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극한 대립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개편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독립 위원회나 전문가 그룹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소모적 힘겨루기를 하는 ‘전국 단위 임금협상’으로 변질됐다. 1988년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노사 합의로 결정한 것은 7번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거시경제 상황과 노동시장의 변화를 분석해 합리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