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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화가 천경자, 베트남戰서 그린 ‘꽃과 병사와 포성’ 첫 공개

종군화가 천경자, 베트남戰서 그린 ‘꽃과 병사와 포성’ 첫 공개

Posted August. 13, 2024 08:20   

Updated August. 13, 202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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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헬기와 탱크, 총성이 오가는 전장이지만 야자수 나무가 울창한 숲과 꽃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1972년 정부는 화가 10명을 선발해 베트남으로 보내 전장을 기록하도록 했다. 그중 한 명이자 유일한 여성 작가였던 천경자(1924∼2015·사진)가 남긴 그림 ‘꽃과 병사와 포성’(1972년)이다. 국방부가 소장하고 있었던 이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에서 8일 개막한 전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을 통해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정부 의뢰로 베트남전 기록화 그려

‘꽃과 병사와 포성’은 폭 185cm, 높이 284cm로 천경자 작품 중에서 손꼽히는 대작이다. 독특한 것은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는 그림의 내용이다. 전시장에서 함께 볼 수 있는 ‘헬기 수송작전’ ‘매복작전’ 등의 스케치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캔버스 회화는 풍경의 존재감이 더 크다. 한희진 학예연구사는 “작가가 전쟁 현장보다 ‘꽃’이라는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더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천경자가 베트남전쟁 현장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문화공보부가 1972년 6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이마동을 단장으로 김기창 등 10명에게 전쟁 기록화를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화가들은 약 20일간 베트남에 머물며 스케치했고 돌아온 뒤 전쟁을 기록한 작품을 남겼다. 천경자는 ‘꽃과 병사와 포성’과 ‘목적’ 등 두 점을 그려 200만 원을 받았다. 덕분에 당시 좋지 않았던 경제 사정이 나아져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전시된 ‘격변의 시대, 여성 삶 예술’전은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 동양화가 23인의 작품 세계를 함께 조명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작품과 작가의 삶에 녹아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짚는다. 천경자가 1950년대에 옷감집을 구경하는 자신을 그린 ‘옷감집 나들이’도 이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개인 소장가가 갖고 있던 작품으로 여러 옷감을 구경하는 작가의 옆모습이 보이고, 옆 검은 우산을 쓴 인물은 함께 나들이를 갔던 작가의 어머니라고 한다. 11월 17일까지.

●중남미 등 풍경 담은 ‘기행 회화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는 천경자 컬렉션 상설전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가 6일 개막했다. 이곳에서는 1998년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을 2002년부터 선보여 왔다. ‘천경자의 혼’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에 이어 10년 만에 재단장한 전시로 회화, 드로잉 등 30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남긴 ‘기행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채색화와 여인상으로 구성한 ‘환상과 정한의 세계’, 기행 회화를 담은 ‘꿈과 바람의 여로’, 해외 문학과 공연 등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예술과 낭만’, 작가가 저술한 수필집을 정리한 ‘자유로운 여자’ 등 4개 부문으로 이뤄졌다.

중남미를 여행하며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쿠스코를 방문해서 라마를 그린 ‘구스코’(1979년), 1989년 카리브해 연안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을 때 그린 ‘자마이카의 고약한 여인’(1989년) 등 이국적인 지역을 방문한 작품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배경인 ‘폭풍의 언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저자 마거릿 미첼 생가에 직접 가서 그린 문학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