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뒤에는 남과 북의 집이 전시돼 있고, 두 세트 사이의 벽은 분단을 상징합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방을 넘어 각기 다른 삶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 분단 너머의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제79차 유엔총회가 개최되고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25일(현지 시간) 남북 가정집의 모습을 각각 본뜬 세트장이 설치됐다. 그 앞에 놓인 의자에서 북한에 가족을 잃은 다섯 명의 사람들은 각각 떨리는 목소리로 한 시간에 걸쳐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진행한 북한 인권 간담회 ‘나를 잊지 말아요(Forget Me Not)’에선 한국과 일본의 납북자 및 억류자 가족들이 무대에 올라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탈북인 손명화 씨는 수십 년간 북한 탄광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한 국군포로 아버지의 사연을 전했다. 손 씨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2013년 유해를 한국에 모셔왔지만, 그 대가로 오빠와 동생, 조카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져야 했다”며 울먹였다. 김규리 씨는 “나는 1998년 탈북했지만 동생은 지난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됐다”며 “동생을 찾을 수 있도록 제발 국제사회가 도와달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1978년 일본의 한 해변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마쓰모토 루미코 씨의 동생 마쓰모토 데루아키 씨, 2013년 선교 활동 중 북한에 잡혀간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 씨도 참여해 가족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전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몇몇 교민도 “나도 북한에 가족들이 있다”고 사연을 전하며 함께 국제사회의 도움을 부탁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다프나 랜드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담당 부차관보가 함께 참석했다. 조 장관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문구는 인권 유린 피해자들의 간절한 호소이자 북한 주민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라며 “북한에 억류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어둠 속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는 분들의 희생과 용기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둘로 나뉘어 자유 인권과 민주주의의 유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잔인한 사회 실험을 경험해 왔다”며 “11월에 있을 북한 인권 정례 검토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뿐 아니라 비전향 장기수, 국군포로, 강제 북송된 탈북자 문제에 대한 우려를 강력히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랜드 부차관보는 “이산가족의 대다수는 80대 후반에서 90대의 고령층”이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을 느끼며 조건 없이 북한과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