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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점에 ‘채식주의자’가 동이 난 이유

미국 서점에 ‘채식주의자’가 동이 난 이유

Posted October. 14, 2024 08:29   

Updated October. 14, 202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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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사람이 물어보는데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은 없어요. 어제 다 나갔거든요. 정말 미안해요.”

1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인기 서점 ‘스트란드’에서 일하는 마고 씨는 너무 아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책은 몇 년 전 이미 읽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흐뭇하게 돌아섰다.

이전에, 지구 반대편의 어떤 몰랐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책을 사 본 적이 있던가.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그랬다. 수상 당일 채식주의자는 아마존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 아마존 앱을 열어 볼 때마다 순위가 쭉쭉 올라가더니 수상 발표 반나절 만에 그렇게 됐다.

미국 사람들은 책을 참 좋아한다. 어딜 가든 책 읽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그들은 여기저기서 책 또는 킨들(아마존의 전자책 전용 단말기)을 들고 있다. 정작 미국 안에서는 책 읽는 사람이 예전만 못 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모두가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서 뭐가 걱정이란 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책을 읽을까. 먼저 지하철을 떠올려 본다. 맞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 지하철에선 인터넷이 전혀 안 터진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역에 설 땐 잠깐 터지지만 출발하면 다시 먹통이다. 그래서 책이 없으면 상당히 무료하다.

이런 1차원적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 워싱턴DC에서 연수를 할 때 거기 지하철은 인터넷이 빵빵 터지는 데도 책을 든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휴가지에서도 그랬다. 해변가에서도, 숲속에서도 사람들은 책을 봤다. 이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랬을까.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미국 어딜 가든 동네마다 가까이에 있던 도서관, 그곳에서 두세 살 때부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을 보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레고도 했다. 주말이면 자원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두세 시간씩 책을 읽어 줬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도서관은 가장 따뜻하고 친절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미국 도서관은 각 연령층에 맞는 액티비티와 북클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비하고 있다. 동네 도서관은 한 번에 최대 50권을 3주간 빌려줬고, 예약자가 없는 도서는 3주를 더 대출해 줬다. 초등학교에서도 모든 아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유일한 숙제가 ‘하루 20분 책 읽기’였다. 독서일지에 어떤 책을 몇 분간 읽었는지 매일 적고, 부모의 사인과 함께 제출하면 선생님이 간단한 칭찬을 써 되돌려줬다. 처음엔 20분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20분만 읽고 끝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단단하게 책을 사랑하며 자라 온 사람들이 이 사회의 여기저기에 있었다.

서점을 나오며 오래전 읽은 이민진 작가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영문본을 샀다. 아마존에서 사면 10.32달러, 서점에서 사면 21.99달러였지만 서점에서 샀다. 대부분 책을 비닐로 꽁꽁 싸 펴볼 수 없게 하는 한국의 대형 서점들과 달리, 모든 책을 마음껏 볼 수 있게 해주는 이곳 서점에 대한 고마움이자 최소한의 예의였다. 아마존의 가격을 모를 리 없었지만, 계산대 앞에는 오늘도 요령 없는 미국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노벨상을 좋아했고, 이들은 책을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