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체구의 잘생긴 사람들이 상점 앞에서 긴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센(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중 일부다. 그는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 구상차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일제에 의해 서양 복식이 확산된 상황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갖춰 입은 조선인들을 그는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간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한 것이다. 당시 독일인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인의 모습을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 예센과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886∼1971)의 조선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이 책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 자료를 수집하다 이를 발견했다.
1898, 1899년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는 독일의 조선금광 채굴 과정을 담은 강연문을 썼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을 캐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광부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맞섰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여파로 19세기 말 조선인들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빼앗아간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 라우텐자흐는 1933년 7∼10월 한반도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 조선을 찾았다, 그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 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을 목격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났다”고 썼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에는 항일무장단체였던 동북항일연군의 주둔지가 있었다. 라우텐자흐가 본 사냥꾼은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기욱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