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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나는 시를 버렸지만, 시는 날 버리지 않았다”

정호승 “나는 시를 버렸지만, 시는 날 버리지 않았다”

Posted October. 01, 2022 07:22   

Updated October. 01, 202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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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 다니느라 15년 동안 시를 한 편도 안 쓴 적이 있어요. 저는 한때나마 시를 버렸던 시인인데, 시는 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처럼 제 손을 잡고 50년이나 이끌어준 시에게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정호승 시인(72)은 9월 2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북토크’에서 시란 존재에게 고마움부터 표했다. 1972년 등단해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창비·1979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1998년) 등으로 한국 서정시에 큰 획을 그은 시인이지만 가정을 이루고 생업에 쫓기면서 시 쓰기를 놓았던 지난날부터 고백했다.

 “시를 50년 썼다는 것보다 나이가 일흔 살이 넘었다는 게 더 충격입니다, 하하. 특히 최근 10년 동안 뭐했나 싶은데, 시집 몇 권 쓴 것 말곤 매일 밥 많이 먹은 것뿐이네요.”

 농과 달리 시인은 여전히 시에 진심이다. 9월 23일 14번째 시집인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펴냈다. 2020년 ‘당신을 찾아서’(창비) 이후 2년 만이다.

 이날 정 시인은 직접 시집에 담은 시를 차분히 낭송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독자는 눈을 감은 채 시를 음미했고, 젊은 여성 독자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했다. 나이도 성별도 달랐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시를 듣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였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누가 보냈는지 모른다/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시 ‘택배’에서)

 이번 시집엔 유독 눈에 띄는 글자가 하나 있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책임을 진다는 것이다’(시 ‘낙과’에서) 등 시 6편에 ‘떨어질 락’(落) 자가 들어 있다. 시인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채 향기를 내며 썩어가는 모과를 보고 썼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인생은 어떻게 져야 하는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시를 찾고 싶으면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직접 쓰지 않아도) 삶 속에 시가 있습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