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 6일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행된 날이다. 12년 후인 1956년 우리나라는 6월 6일을 현충일로 제정했다. 이 날짜를 정한 이유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은 고려 현종 5년(1015년) 6월 6일 전사자의 뼈를 집에 보내 제사하게 하는 풍속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조선 시대에는 망종에 병사의 뼈를 묻어주는 풍속이 있었는데 마침 1956년 망종이 6월 6일이어서 이날로 정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런 주장은 좀 이상하다. 고려 현종 때 일은 거란과의 전쟁 중에 시행된 일이라 연례행사는 아니었다. 망종 때 병사의 뼈를 묻는 풍속도 이해하기 힘든 게, 망종은 연례행사고 전쟁은 불특정하게 발생한다. 게다가 망종은 농사 절기 중에서도 제일 바쁜 시기다. 이때까지 파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쟁기질을 하다가 뼈를 발견하는 수는 있겠지만 전사자에 대한 예우와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행사는 여제((려,여)祭)다. 여제는 전쟁, 공사, 재해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희생자들을 위해서 지내는 제사다. 여제는 1년 3차례 지냈는데 청명, 7월 15일, 10월 1일이다. 절기가 아니라도 전투가 벌어져 전사자가 발생하면 여제의 의례를 따라 제사를 지냈다. 1605년 종성의 동관진이 여진족의 습격에 함락되어 병사와 주민이 살해되고 첨사도 사망한 일이 있었다. 다음 해 2월에 사망자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 시대답게 남녀를 구분해서 시신을 묻고 별도로 제사를 지냈다. 여제를 현충일로 본다면 조선 시대는 1년에 3번이나 현충일이 있었던 셈이다.
6월 6일과 망종설은 아마도 6·25전쟁이 발발했던 6월에 날을 정하려다가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현충일을 1년에 3번으로 늘린다거나 다른 날로 바꾸자는 주장이 아니다. 다른 나라 역사를 봐도 역사적인 기념일은 단 한 번의 에피소드로도 얼마든지 제정된다. 그냥 6월이 6·25전쟁이 발발한 달이고, 고려-거란 전쟁은 수도가 함락되고 엄청난 희생자를 냈던 전쟁이었으니, 1015년 6월 6일의 일은 그 한 번만으로도 현충일의 의미가 충분했을 것이다. 날짜 선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해설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