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한일 양국이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안정과 디지털 전환 등 미래 지향 신(新)선장 산업으로 협력 수위를 넓히고 있다. 한국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 발표를 계기로 재계 간 첨단산업 협력도 본격화한 것.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죄·반성, 배상·기여 문제에서 기시다 총리와 피고 기업이 얼마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내놓을지가 향후 한일 관계 복원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가 도쿄 경단련 회관에서 주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두 나라는 공급망, 기후변화, 첨단과학기술, 경제안보 등 다양한 글로벌 어젠다에 공동으로 협력하고 대응할 것”이라며 “디지털 전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정부는 여러분이 마음 놓고 교류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분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한일 경제인 행사에 참석한 것은 2009년 6월 이명박 대통령 방일 기간에 개최된 ‘한일 경제인 간담회’ 이후 14년 만이다. 다만 기대됐던 기시다 총리의 참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개월 만에 얼어붙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승부수를 던진 가운데 정상회담 득실을 둘러싼 국내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일본 정부에 기시다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고 기업의 전경련과 일본 경단련 출연 미래파트너십기금 참여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 방일 기간에 맞춰 메시지를 내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가지 현안 모두 이번 방일에선 일본의 언급이 없었다. 이에 기시다 총리가 한국 방문 때 사죄·반성에서 진전된 입장을 내거나 피고 기업의 미래기금 참여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윤 대통령이 국내 여론을 설득하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회담과 논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을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회의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교도통신과 NHK가 보도했다.
장관석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