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82)이 은퇴를 번복하고 10년 만에 내놓은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25일 개봉했다. 홍보 활동을 일절 하지 않았지만 개봉 하루 만에 25만5000명이 관람했고, 예매율은 60%에 달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영화는 미야자키 감독이 자기 방식대로 쓴 한 편의 아름다운 자서전이자, 이 세계에서 찰나를 공유하고 있는 ‘그대들’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영화는 데일 듯 생생한 시뻘건 불길로 시작한다. 일본 도쿄에서 공습 경보가 울리고 화마는 11세 소년 마히토(목소리 연기 산토키 소마)의 엄마를 집어삼킨다. 화재 이후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기무라 다쿠야)는 마히토와 함께 시골로 거처를 옮기고, 처제인 나쓰코(기무라 요시노)와 재혼한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아버지를 향한 서운함, 이모가 새엄마가 된 데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마히토는 남몰래 마음속 악의를 쌓아간다. 어느 날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구니무라 준)가 날아와 “죽은 엄마가 살아있으니 나를 따라 오라”고 말한다. 마히토는 엄마를 찾아 시공이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영화는 전개가 친절하지 않고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은유로 가득하다. 미야자키 감독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됐다.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동명의 소설에서 따왔는데, 미야자키 감독이 어릴 적 어머니가 선물한 책이라고 한다. 미야자키 감독 역시 마히토처럼 1941년에 태어났고, 전쟁 공습을 피해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큰할아버지는 5년 전 별세한 선배 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왜가리 남자는 미야자키 감독의 동료이자 친구인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를 묘사했다.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손으로 그려 제작에만 7년에 걸렸다. 일렁이는 불꽃과 나풀거리는 종이의 질감, 꿀렁거리며 쏟아져 나오는 생선 내장 등 생동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위험하고, 더러운 곳이더라도 친구들이 있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마히토에게 큰할아버지는 “너만의 탑을 쌓으라”고 조언한다. 평생을 바쳐 지브리라는 탑을 쌓은 노(老)감독이 여든두 해를 살고 얻은 답같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