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커버 스토리/강남사람 강북사람 강남은 오렌지, 강북은 탱자? 패션 미용 교육 문화시설 등 큰 차이... 세수 확보 싸고 남-북 전쟁도

유명 시사평론가인 정범구씨에겐 이런 일화가 있다. 모 TV 토론프로그램 사회를 맡았을 때다. 그는 오프닝에서 똑같은 법과 제도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도 관습에 따라 사회적 결과에는 많은 차이가 생긴다는 말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강남에 심으면 귤이 되는 것이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자연법칙이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 고사(古事)인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인용한 말이었다. 물론 여기서 강남과 강북은 양쯔강 이남과 이북을 뜻했다.

그러나 며칠 뒤 한 PC토론방에서 그의 발언을 두고 ‘엉뚱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가 서울 강남의 문화를 찬양하고 강북을 후진적인 것의 상징으로 매도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회자’라며 자질 문제까지 거론했다. 정씨로선 황당한 노릇이었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 그러잖아도 영-호남간 지역감정이라는 몹쓸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선 강남북을 가르면서 한쪽을 낮춰보는 듯한 공개적 언행은 어쩌면 금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두 지역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주거와 교육환경이든, 소비와 패션문화의 수준이든, 강남북 사이엔 엄연한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제 어디서 술 먹었어?” “강남에서.” “잘 나가는 구먼.”

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서울의 직장인 남성들이 얼마나 될까.

“그 친구 어디 사는데?” “강남 쭛쭛동에.”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젊은 부부 사이에서 한번쯤은 오갔을 법한 대화다.

이런 것들은 서울 사람들의 의식 속에 분명 ‘강북과는 다른’ 강남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강남과 강북은 여러 면에서 ‘물이 다르다’고 말한다. 눈에 잘 띄는 패션과 미용에서 그런 차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올들어 중고생들 사이에 ‘교복 변형’이 유행했다. 그런데 강남북의 유행스타일이 달랐다. 헐렁헐렁한 힙합패션은 강남에서, 깡총한 복고패션은 강북에서 우위를 점했다. 강북의 S고 2년생 K군은 “청담동에 놀러갈 때 복고풍을 입거나, 사는 동네에서 힙합을 입으면 이상한 아이 취급받아요”라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의 차림에도 차이가 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강남 여성들은 대체로 파스텔톤의 누드화장과 심플한 디자인의 모노톤을 좋아하는데 반해 강북 여성들 사이에는 색깔이 짙은 루즈 등의 색조화장과 화려한 의상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강남에 살면서 강북의 직장에 다니는 주부 쫛씨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강남의 문화는 평균적으로 ‘고급 선호 문화’다. 강북에서는 옷의 모양과 색상으로 튀어 보이려고 하지만 강남에서 중요한 것은 상표다. 상표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강남북이 비교되는 것은 의상과 화장에서만이 아니다. 문화-여가생활과 관련이 있는 문화`-`체육시설 수를 비교해 봐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98년 12월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25개구 중 골프연습장이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109개)다. 2, 3위는 송파구(70개) 서초구(63개)로 4, 5위인 은평구(28개) 강동구(24개)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수영장이 많은 곳 역시 강남(9개) 송파`-`양천(각 8개) 서초(6개) 순이다.

전시시설인 화랑은 종로(128개) 강남(87개) 중(10개) 서초(8개) 순으로 많다. 종합공연장과 일반공연장, 소공연장, 영화관 등 공연시설 수도 종로(64개) 강남(29개) 중(27개) 서대문(20개) 송파(19개)의 차례다. 오랜 세월 공연과 전시문화의 중심지였던 종로`-`중구를 빼면 강남지역의 상대적 우위는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전반적 소비수준도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강남의 백화점들이 강북의 백화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상품을 많이 판다는 것은 이제는 진부한 얘기에 가깝다.

南은 힙합`-`北은 복고, 南`-`누드화장 北`-`색조화장 유행

그러나 주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차이는 교육환경과 관련한 것들인 듯하다. 서초구 서초동에서 3년간 살다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이사한지 2년째인 주부 S씨(33)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강북) 이사올 때까진 제가 그렇게 편리한 곳(강남)에 사는 줄 몰랐어요. 교육문제에서 가장 불편을 느껴요. 딸의 감성교육을 위해 보냈던 시치다학원도, 유치원식 영어학원인 ECC도 강남엔 널려 있지만 여기선 찾을 수가 없어요. 목동엔 시치다학원이 있다지만 너무 멀어서….”

중고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강남선호는 더하다. 중학생인 외아들의 교육을 위해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사했다는 40대 주부 K씨의 얘기다. “무엇보다 명문고가 많잖아요.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높고…. 또 멀리 찾아갈 것도 없이 가까운 곳에 좋은 학원들이 있어 편해요.”

강남이 ‘자녀를 키울 만한 곳’의 대명사처럼 된 결정적 요인은 명문고교의 강남 정착이었다. 오랜 세월 강북에서 한국의 인재들을 키워온 전통의 명문고 중 상당수가 70년대 후반부터 강남북 균형개발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강남으로 이전했다. 경기고 서울고 휘문고 보성고 등이 그 예들.

이들이 강남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른바 ‘8학군병’이 생겨났고 강남선호 현상을 부채질했다. 강남 이사를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교육을 위해 세번이나 이사했다는 삼천지교(三遷之敎)의 교훈을 실천하는 것 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강남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경제력은 학교에 대한 지원에서도 잘 나타난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동 K초등학교는 올 3∼8월 학교발전 기금으로 1억2600여만원을 거뒀다. 반면 노원구 S초등학교는 한푼의 기금도 받지 못했다. 강남교육청 관내 49개 초등학교는 평균 2100여만원을, 중부교육청의 33개 초등학교는 평균 1100여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진짜 부자, 뼈대 있는 부자는 강북에 산다”

강남이 다 좋은 것은 물론 아니다. 비싼 물가도 강남살이를 어렵게 하는 한 요인. 강남구 청담동에 사는 한 30대 사업가는 “서초동에 살 때는 와이셔츠 한벌을 세탁소에서 다리는데 3000원이었는데 청담동에 오니까 4500원이다.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는 친구 얘기로는 1000원이라던데….”

반론도 없지 않다. 마포구 성산동에서 서초구 양재동으로 이사한지 6년째라는 대학강사 L씨(39·여)는 이렇게 말한다. “동네 슈퍼마켓으로 따지면 물가가 비싸다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대형 할인매장이 곳곳에 널려 있어 얼마든지 싸게 쇼핑할 수 있어요. 결코 생활비가 많이 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강남북의 차별성은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 배경엔 경제력의 차이가 있다. 우선 구청의 살림부터 그렇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서울 25개 구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8.7%. 이중 중구(96.2%)와 서초구(94.8%) 강남구(93.2%) 송파구(86.1%)는 ‘부자동네’로 손꼽힌다. 반면 도봉구(38.3%), 중랑구(38.7%) 은평구(38.7%) 강북구(39.2%)는 재정자립도가 40%도 안될 정도로 가난하다.

지방세 징수액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앞의 서울통계연보에서 보면 강남구가 7142억여원으로 단연 1위다. 이어 서초구 4235억여원, 중구 3832억여원, 송파구 3363억여원 순.

서울에 사는 약 300만가구 중 30.4%는 방 3개를, 27.2%는 방 4개를 쓴다. 하지만 강남구와 서초구는 다르다. 강남구 가구의 32.1%, 서초구 가구의 34.3%가 방 4개를 쓰며 방 3개를 쓰는 경우는 26.7%와 20.3% 정도다.

물론 강남은 다 잘살고 강북은 다 못산다는 단순한 도식은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성북구 성북동, 종로구 가회동 등은 한국을 대표하는 부자마을로 오히려 강남을 ‘낮추어 보는’ 곳들이다.

수십년간 성북동에 살아온 Y씨(68)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부자들, 뼈대 있는 부자들은 강남 같은 곳에 살지 않는다. 수십년 살면서 만난 이웃들 모두 대단한 집안이다. 이들은 한군데서 수십년은 보통일 정도로 오래 산다. 어쩌다 강남쪽을 가보면 화려하면서도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대립과 마찰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세수확보를 둘러싼 ‘남북전쟁’이 대표적 사례.

올해초 서울시는 자치구 사이의 재정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구가 걷는 종합토지세와 시가 걷는 담배소비세를 맞바꾸는 이른바 세목교환 입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강남-송파-중-서초-강동-용산구 등 6개 구청이 강력히 반발, 이를 무산시켰다. 6개 구청의 종토세액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지라 찬성할 리가 만무했던 것.

이런 일들로 강남북 구청과 주민간에는 앙금이 쌓이고 있다. 강북쪽에서는 “과거 강북주민의 세금으로 강남을 개발했는데 이제 와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부자 구청이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구민들의 문화욕구까지 배려하는 반면 가난한 구청은 도로 포장비조차 걱정하고 있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

강남쪽에서는 “강남지역 개발은 서울시 일반회계 예산이 아닌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 특별회계로 이루어졌다”고 반박한다. 재정수요에 비해 재정수입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노인정 하나를 짓는데 강북 일부 구에서는 땅 한평에 500만∼600만원이면 살 수 있지만, 강남에서는 1500만∼2000만원을 줘야 하는 현실을 무시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南`-`北 갈등 마찰보다 차이 인정을”

도시문제전문가인 강홍빈 서울시행정1부시장은 우선 강남북의 ‘서로 다름’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한다. “사회의 다양화는 공간에도 반영되게 마련이다. 지리학자들은 이를 ‘거주지분화’라고도 하고 건축에서는 공간분화, 특화 등으로 표현한다. 다양화된 사회에선 소득이나 생활방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역사까지 다르다면 더욱 그렇다.”

그는 이어 다름에 대한 긍정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들판에는 소나무 군락도 있지만 초지도 있고 작은 덤불 군락도 있는 것처럼 모든 지역마다 같은 수의 소나무, 버드나무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왜 다른가’가 쟁점이었지만 이제는 ‘다름’에 대한 긍정적 접근이 필요하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서 출발, 다름을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강요된 불이익’은 문제로 남는다”면서 “가령 지방세 문제에서 혜택받는 쪽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철 ·서영아 기자 fullmoon@donga.com·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