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특집/ 사이버 윤락 사이버 매춘, 그 핑크빛 유혹' 컴섹...폰섹...번섹..."나를 사세요" 인터넷 원조교제 활개

와장창' 97년 10월29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윤락가 ‘텍사스촌’이 철거반의 쇠망치에 사정없이 뜯겨 나갔다. 두달 뒤 검찰은 윤락여성들의 종착역이었던 ‘흑산도 사창가’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윤락가 철거는 이렇게 요란하게 시작됐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윤락가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아니다. ‘고전적인’ 윤락가가 무너진 자리를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다.

쇠망치가 통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매매춘. 이른바 ‘사이버 매매춘’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 가고 있다.

10월9일 오후 3시. 기자는 ‘www.s….co.kr’이란 인터넷 전문 대화방사이트에 여자 상대를 찾는 대화방을 개설했다. 바로 한 여성이 ‘입장’했다. 5분쯤 대화를 나누자 이 여성은 “용돈도 좀 줄 수 있느냐”며 만남을 제의해 왔다.

‘마음 내키면’ 성관계 … 20만~30만원씩 받아

이날 오후 4시30분 서울 신촌의 모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취재를 위해 나왔다고 하자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웃음을 띠며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는 서울 S대 2학년 최모(21·서울 강남구 개포동)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기자와 만난 이유를 묻자 옷값을 마련하기 위해서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최양은 고등학교 때부터 PC통신 대화방을 즐겨 찾다 올들어 인터넷대화방 ‘s…’로 옮겼다고 한다. 인터넷대화방은 화면이 천연색으로 화려한 데다 ‘이성간 비공개 1대 1 대화’ 분위기가 돼있고 대화내용도 훨씬 직설적이어서 ‘호기심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최양은 지금까지 대화방을 통해 30, 40대 회사원들과 4차례 ‘원조교제’를 했다. 자기과 학생 50명 중 10명이 대화방을 통해 중년남성을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친구들에 비해 신중한 편이라고 했다.

“저는 남성이 개설한 대화방에만 들어가요. 제가 대화방을 만들고 남자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저는 ‘ 직업여성’이 아니거든요. 첫 만남에서는 대개 차만 마시고 돌아와요. 두번째부터 본격적으로 사귀죠. 보통 한달쯤 만납니다.” 최양의 원조교제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까. 상대방 남자와 하루종일 같이 지내며 ‘마음이 내키면’ 성관계도 갖는데 만날 때마다 20만원씩 받았다고 한다. 최양은 “상대방이 마음에 들고 매너도 좋고 해서 오래 만난 것이지 꼭 돈이 목적은 아니었다” 고 말했다.

서울 모여고 2년생인 정모양(17). 친구들에게 묘한 이야기를 들은 정양은 한달 전쯤 처음으로 인터넷 대화방사이트에 접속해 보았다. 정양은 게시판에 ‘설(서울) 사는 20대 남자만’이란 제목으로 글을 띄웠다. 재미삼아 해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그후 정양은 대화방 사이트를 탐방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기자가 정양을 만난 것은 10월10일 오후. 고교생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성숙한 외모의 정양은 만나자마자 휴대폰을 내보이며 자신의 ‘인기’를 자랑했다. 그녀의 휴대폰엔 남자들로부터 20여통의 ‘구애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정양은 “인터넷상의 만남은 일주일에 두번꼴로 직접적인 만남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정양은 지금까지 4, 5회 정도 ‘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녀 역시 한번 만날 때마다 20만∼30만원을 받았다.

일부 여고생 가세 … 대화방서 ‘상대’ 찾기는 시간문제 정양의 ‘매춘’ 행태는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원조교제와 내용에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터넷이 매개체가 됐고 ‘알바’ (아르바이트의 약자로 남자와 만나 함께 지내며 돈을 받고 성관계도 갖는 것)라는 컴퓨터통신 스타일의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터넷을 통해 남자들과 만나 ‘교제’를 즐기는 여성 대부분이 연락수단으로 이메일을 쓰는데 정양은 유독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본인의 신상이 드러날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정양은 “채팅에 골몰해 있는 것을 보다 못한 부모님이 컴퓨터를 거실로 옮겨 놓았어요. 그 뒤로는 게시판에다 얼른 글만 올려 놓고는 휴대전화로 통화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연락번호를 두 개씩 쓸 수 있어 오히려 더 편하다고 했다. 정양의 친구들은 어떨까. 대부분 사이버통신을 통해 남자친구를 만나며 그중엔 ‘알바’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정양은 말한다.

10월8일 밤 ‘짜릿한 얘기 구함’이라는 제목으로 대화방에 글을 올린 20대 직장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10여분간 대화했다. “야한 제목이 여성 이용자들에게 거부감을 줘 접속률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성들이 더 대담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이 성적 혐오감을 주더라도 비어 있는 대화방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PC게임방을 이용해 인터넷대화방에 접속한 여성과 두차례 ‘알바’에 들어갔다고 그는 밝혔다.

10대 P군은 인터넷 음란사이트의 대화방에 낙서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는 10월8일 하루 동안 K사이트 게시판에 6차례 성적인 내용의 글과 함께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올렸다. 대다수 인터넷대화방은 PC통신 대화방과는 달리 선정적 분위기 일색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런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게 P군의 얘기다. P군은 “인터넷대화방에서 여성과 음란한 채팅을 자주 한다. 그러나 만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 … 통제불능 … 존재하는 것은 ‘본능’뿐

현재 국내 인터넷이용자는 550만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어로 된 인터넷 음란물사이트는 150여종이며 영어로 된 음란물사이트 6만여종이 국내에서 접속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이트들은 예외 없이 대화방과 게시판을 열어 놓고 있다. 이 외에 600여개가 넘는 대화방 전용 사이트에서도 채팅이 가능하다.

인터넷대화방은 검색사이트에서 ‘대화방’ ‘채팅’ 등의 검색어만 치면 수백여개의 대화방에 바로 연결되며 최근 이용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N사이트는 10월10일 하루 동안 7000명이 들렀고 금년 초 개설 이후 연인원 70만명이 찾았다고 조회건수를 밝혔다.

인터넷대화방에 참여할 땐 대부분 이메일 제시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무료로 이메일을 제공하는 사이트가 수십개에 이르고, 이메일을 받을 때 굳이 신분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인터넷대화방이나 게시판은 대부분 익명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입비 없는 곳이 많고 뜨내기손님이 대부분이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대화방사이트는 설치만 됐지 운영자에 의한 음란광고 등 불법행위가 전혀 차단되지 않고 있다.

10월1일부터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국내 인터넷대화방 사이트들에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 ‘정보통신사업법에 따라 매춘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폐쇄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엄포는 먹혀 들지 않는다. 사이트는 무한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외국사이트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실정이다.

‘익명성’과 ‘통제불능’이 만나는 인터넷대화방에서 존재하는 것은 ‘본능’뿐이다.

대다수 게시판은 ‘용돈 필요한 여성을 찾거나’ ‘용돈 줄 남자를 찾는’ 광고로 꽉 차 있다. 대화방에서의 대화내용은 중-고등학생부터 30, 40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진한 농담‘에서 시작해 ‘컴섹’ ‘폰섹’ ‘번섹’으로 이어진다.

‘10만원 OK?’ ‘OK’. 인터넷잡지 ‘아하PC’의 취재팀장 박용후씨는 “요즘 넷상에서의 대화는 단적으로 이 정도 수준” 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터넷이 거대한 ‘매춘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터넷대화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이용자도 많아지다 보니 대화방도 ‘차별화’되고 있다. ‘음란물관련 정보를 교환하는 방’ ‘장난삼아 야한 글을 게시판에 띄우고 음란한 대화 주고받는 방’ ‘진짜 원조교제 잘 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신촌에서 만난 최양은 “대학생, 직장인들 사이에 ‘s… 대화방’은 원조교제상대를 구하는 데 단연 인기”라고 말했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운영자가 게시판이나 대화방의 제목을 저속하지 않게 관리해 정부의 단속을 피할 수 있으며 신원이 공개되거나 대화내용이 검색될 염려가 없기 때문. ‘부킹 잘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교양 있고 경제력 있는’ 원조교제 상대가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인터넷대화방에선 마음만 먹으면 타인을 얼마든지 골탕먹일 수도 있다. 이달 초 S양은 낯선 남자들로부터 난데없는 전화가 자주 걸려와 깜짝 놀랐다. ‘나이 20살, 집은 영등포, 글래머스타일, 알바 구해요’라는 메모와 함께 자신의 실명, 휴대폰 번호가 자기도 모르는 새 인터넷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던 것. S양은 그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보다 못한 S양의 선배 K씨가 ‘이 사이트 운영자가 이 글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고발하겠다’는 내용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나 S양의 글은 일주일째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용자들에게 매매춘을 권유하는 ‘사이버 포주’도 대화방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PC통신 가입자들의 개인 ID에 여성과의 ‘은밀한 만남’이나 매춘을 알선하는 글을 띄운다. 지난달 검찰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러시아여성 매매춘을 알선한 혐의로 2명을 구속했다.

인터넷에는 서양에서나 볼 수 있는 별난 게시물도 있다. 대화방사이트 동아리인 ‘자유로운 성문화를 위한 모임’이 그것. 이 모임의 회원모집 광고에는 ‘건장한 육체, 부부커플 환영, 자유로운 성 지향’이라고 적혀 있다. 그룹스와핑을 암시하는 듯한데 신청자가 쇄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이버 포주 버젓이 활개 … ‘디지털 홍등가’ 눈앞 인터넷대화방의 원조 격인 PC통신 대화방도 윤락행위에 많이 노출돼 있다. 윤락행위로 경고-사용정지 처분되는 경우는 통신사 한곳당 한달 평균 150여건에 이른다.

한국여성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98년 룸살롱-티켓다방 등 유흥업소의 윤락녀는 57만명, 사창가 종사자는 6000명이었다. 이 단체의 변화순부장은 “올 들어선 인터넷이 ‘프리랜서 윤락녀’를 양산, 윤락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변부장은 인터넷사이트 개설자와 이용자의 의식전환이 시급하며, 너무 저급하게 흘러가고 있는 대화방의 수준을 높일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6월 경찰청은 274명의 컴퓨터 범죄사범을 적발했다. 올해 같은 기간엔 1370명으로 6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망은 인터넷매매춘의 초기 형태인 ‘음란물판매행위’(1046명)에만 집중됐다. 인터넷 불법사이트 운영 혐의로 경찰청에 적발된 경우는 단 2명뿐이었다. 이에 대해 한 인터넷 검색사이트회사 운영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속도 차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미국처럼 음란사이트의 대화방에서 사진을 보며 파트너를 고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는 “올해는 탁월한 정보 제공, 배타적 개별접촉 등 인터넷의 특성이 매매춘산업에 적용되는 초기단계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세기말의 인터넷은 누구도 부수기 힘든 ‘디지털 홍등가’를 건설하고 있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