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경제 미국에 부는 '평생고용' 바람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수십년간에 걸쳐 관행으로 자리잡았던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가 붕괴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우리 사회가 갖고 있던 노동시장 관행의 합리성이 전면 부정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노동 관행은 불합리성과 비생산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장경제하에서 장래에 필요할 수 있는 인력까지도 보유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이 잠재적 잉여인력을 책임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9월29일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GM이 전미 자동차노조(UAW)와의 노사협상에서 종신고용제를 합의한 것이다. 또한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UAW와 종신고용제 도입에 합의했다. 양사의 종신고용제는 10년 이상 근속 노동자들에 대해 정년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포드자동차도 곧 이 제도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35만명의 UAW조합원 중 18만여명이 종신고용을 보장받게 될 전망이다.

GM 크라이슬러 등 잇따라 종신고용제 합의

GM의 회사측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주고 종신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근무 기간이 10년 미만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임의로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는 인사권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GM은 향후 10년간 생산직 근로자 수를 14만8000명에서 10만명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종신고용제 도입을 통해 회사측은 구조조정의 강력한 수단을 가지면서 충분한 숙련 노동자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노동자들 역시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이라는 실질적 이득을 챙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대표 업종인 자동차업계가 종신고용을 채택함에 따라 다른 업종에도 상당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종신고용제가 국가별 상황에 맞게 적용될 문제일 뿐 원칙적으로 배척해야 할 제도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면서 일본경영자단체연합의 회장이기도 한 오쿠다 히로시씨의 견해를 보자. 그는 여전히 종신고용이 인간을 중시하는 장점을 가진 훌륭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좋은 대기업은 대개 종업원을 평생 고용하고 있다. 다만 각 나라들은 여력이 없기 때문에 이 제도를 채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공 서열제를 고수하자는 것은 아니며 실력과 능력에 대한 적절한 평가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구제하는 것은 결국 사회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재 일본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비록 지금 일본 경제가 침체를 지속하면서 일본의 과거 관행이 무시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자신들의 제도와 관행이 각광받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어떤 이념이나 제도를 받아들일 때 본질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연봉제도 성과나 능력에 따른 임금 차별화라기보다 기업들이 임금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자연스레 노동자들의 머리에는 ‘직장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며 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라도 훌훌 털고 떠나겠다’는 생각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개인적 역량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는 연봉제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지탱했던 단결력과 추진력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과거로 회귀하거나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에 역행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는 만큼 노동 관행에 대한 우리의 사고도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