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경제 "실익없는 장사" 곳곳서 비난 목소리 뉴질랜드 "2006년부터 무관세" 이미 선언... 국내 농민들만 타격 입을 가능성

김대중대통령의 뉴질랜드 방문과 뉴질랜드 쉬플리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국익을 무시한 섣부른 결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국책 연구기관마저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이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보고서를 냈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뉴질랜드는 칠레에 이어 우리나라의 두번째 자유무역협정 당사국이 되는 셈이다. 자유 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각종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철폐돼 양국간 상품과 서비스가 자유롭게 드나들고 교역량은 급증하게 된다.

문제는 이미 뉴질랜드가 2006년부터 자국으로 들어오는 수입 물품에 대해 관세를 전혀 물리지 않는다는 ‘무관세 선언’을 해놓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미 관세 철폐를 선언한 뉴질랜드와, 관세 폐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대부분의 통상 전문가들은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라는 데에 동의한다. 뉴질 랜드에 한국은 5위의 교역 대상국이지만 한국 입장에서 뉴질랜드는 58위 교역국에 불과하다. 게다가 뉴질랜드의 내수 시장이 협소해 우리나라가 뉴질랜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실익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뉴질랜드의 대한(對韓) 주요 수출품이 농산물인 것을 감안할 때 국내 농민들만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만도 2억9000만달러의 대뉴질랜드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통상관료 없었나” 외교통상부의 용역 의뢰를 받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이미 지난 7월 비슷한 결론의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뉴질랜드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위기로 인한 수출 감소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고 △한국-칠레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자 한국의 농산물시장을 칠레에 빼앗길 것 같은 위기감을 느껴 자유무역협정을 강하게 들고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정밀 검토 후 추진 여부 결정’. 사실상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이 국익에 아무런 도움도 될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관계자조차 “신문을 보고서야 한국-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또다른 관계자 역시 “지금은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주력해야지 새로 일을 벌일 시기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부 통상 전문가들은 뉴질랜드의 거듭되는 요구를 김대통령이 거절하지 못했고 어떤 통상 관료들도 이에 대해 ‘안된다’는 직언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뉴질랜드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정상회담 이전에 뉴질랜드가 자유무역협정을 강하게 들고 나올 경우에 대비해 ‘공동 연구하기로 한다’는 합의 방안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양국 정상이 발표한 공식 성명에는 ‘양자간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양국 연구기관이 공동 연구를 하기로 했다’는 언급만이 나올 뿐이다. 정부측도 ‘추진하다 보면 안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로이 퍼그슨 주한뉴질랜드대사는 “자유무역협정은 어느 한쪽이 이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한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뉴질랜드측의 강한 의지를 암시했다. 외교통상부 다자통상총괄팀 김한수과장은 “양국간의 외교적 관계가 존재하는 마당에 상대방이 강하게 들고 나오는데 일방적으로 ‘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다른 통상 전문가는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한다면 대통령 밑에도 ‘No’라고 할 수 있는 통상 관료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