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사회 토종식물 외국 손에 넘어갈라 제주 '여미지식물원' 미국기업에 헐값 매각 위기... 자생종 특산종 등 대량 유출 불보듯

제주도의 명소 여미지식물원이 외국기업에 헐값에 넘어갈 위기에 놓여 있다. 여미지식물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포투자협의회가 출자한 외국투자법인 CGI(Creative Group International)사에 11월말경 매각될 예정.

지난 89년 10월 문을 연 여미지식물원은 본래 삼풍건설 소유였으나, 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뒤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조로 서울시로 넘어갔다. 서울시는 96년 7월부터 6차례에 걸쳐 식물원을 공매처분하려 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꼭 외국기업에 팔아야 하나”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내에 위치한 이 식물원은, 부지 12만979㎡에 온실 2만2700여㎡, 정원 2만3000여㎡ 등을 갖춰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 자생종이나 특산종과 외국에서 비싸게 사들여온 식물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00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용설란을 비롯, 새우란 복수초 나도히초미 등 제주도 자생식물과 파키스타키스 구근베고니아 가시연꽃 등 2000여종 15만8000본에 달하는 생물종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의 당초 계획은 8월31일까지 이 식물원을 CGI사에 매각한다는 것. 한동안 일은 순조롭게 추진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CGI측에서 3개월간의 계약체결 연기요청을 해온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여 계약이행 추가예치금 3억원만을 입금토록 하고 연 8%의 이자액을 탕감해 줬다.

그러나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은 “차제에 식물원 매각을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영남대 조경학과 김용식교수는 “당국에 의지가 없는 것이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나 제주도가 매입해 관리하는 방안은 왜 고려조차 하지 않는가. 여미지식물원은 국익 차원에서도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라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서울시가 한국감정평가원에 의뢰한 감정평가서에 식물에 대한 자산평가가 누락됐다는 점을 든다.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2000여종에 달하는 식물에 대한 가치평가를 빼고, 부동산과 시설에 대한 평가만으로 매각가격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 탓도 있어서인지 삼풍사고 전까지 여미지 식물원의 자산가치는 1000억원대로 알려져 왔는데, CGI사와 계약할 때는 517억원으로 줄었다.

이같은 환경단체와 학계의 주장에 대한 고건 서울시장의 입장은 “대안이 없다. 외자유치와 시 재정확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는 것. 서울시는 여미지식물원 매각을 추진하면서 관련 정부부처인 환경부와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전세계적으로 생물종과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여미지식물원이 통째로 외국기업에 매각되면, 우리 고유종의 종자와 유전자정보가 대량 유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금도 영국 자연사박물관이나 일본 도쿄대에서 국내에서는 사라진 우리 자생종이나 특산종의 표본과 종자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법적인 보호장치도 없다. 자연환경보전법에 들어 있던 종자원이나 정보 유출에 관련된 법규가 지난 98년 WTO 제소에 의해 삭제됐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과 유전자 보존을 위한 노력은 국가의 책무다. 한강을 자연친화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1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서울시가 중요한 환경자산을 덤핑으로 외국에 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미지식물원의 운명은 이제 한달 남짓 사이에 결정된다.

서재철/ 녹색연합 생태보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