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SPECIAL 주간동아 칼럼 특별 검사와 '국민 정서'

국민감정’ 혹은 ‘국민의 정서’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자의적(恣意的)인 해석이 가능한 이 말은 그러나 때때로 어떤 정책이나 규범보다도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그 한 예로 기억되는 것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 불가’가 있었다. 한-일간에 대중문화 개방이 논의될 때마다 ‘불가’를 말하는 우리 정부의 대답은 한결같이 ‘국민의 정서’가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허구였던지는 바로 그 ‘국민의 정서’를 정부가 슬며시 거두어들이면서 드러났다. 지난해 일본 대중문화의 부분 개방을 선심 쓰듯(?) 결정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어느 곳에서도 ‘국민의 정서’를 살피고 배려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서 대중문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문을 연 그것은 ‘문화상품’이다. 일본 상품에 문을 열었을 뿐이다. 이럴 것이었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국민의 정서’ 운운할 것이 아니라,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일본 문화상품의 수입도 보류한다고 말부터 달랐어야 하지 않았을까.

조폐공사 파업유도와 옷로비 사건을 위한 특별검사제를 바라보면서 이것 또한 국민의 정서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허구는 아닌지 의문을 버릴 수 없다.

‘흘러간 노래’를 다시 부를 것인지, 아니면 ‘스타탄생’의 신선함이 이루어질 것인지, 특검제를 보는 눈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보통 검사보다도 못한 독소조항으로 가득찬 특별검사의 활동영역에서 무엇이 새롭게 밝혀지겠느냐는 우려이다. 어쨌든 이미 기소까지 된 사건이 유턴하여 특별검사의 손을 다시 거치게 된 배경에는 ‘국민 감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옷로비 사건이라는, 정신나간 고관부인들의 행각부터 그렇다. 별별 국가기관이, 사직동팀인가 하는 이름부터 으스스한 경찰조직에서부터 국회청문회까지 수사 및 조사를 거듭한 사안을 놓고 이번에는 특별검사를 통해 사건을 종결(?)시키자는 것이다. 바로 국민의 정서가 이 사건들의 처리 결과에 대해 납득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여기에 뒤따른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 실체적 진실’보다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별검사제는 국민 정서가 만들어낸 허구 아닌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식의 ‘국민의 정서’라는 것이 언제까지 이토록 자의적인 해석과 허구의 논리를 현실화하는 데 동원돼야 하는 것인가.

특검제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가지는 각별함도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 ‘국민의 정서’와 ‘실체적 진실’이라는 두 사안 사이의 거리에 특검제와 같은 ‘특별함’이 있어야 하는가. 보통의 것을 이미 있어 온 보통의 정도(正道)로 해결하지 못할 때 그 사이에 또다시 끼여들 수밖에 없는 ‘국민의 정서’를 불식시키기 위한 특별함이 계속돼야 한다면 그것 또한 비극일 수밖에 없다. 특별검사에게 보내는 국민의 성원도 더 이상 특별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특검제에 바라는 것도 결국은 이런 국민의 정서라는 이름의 불신에 대한 종결이다.

진실은 하나일 뿐이며, 그것을 찾아가는 길도 둘일 수가 없다.

한수산<작가·세종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