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4호]

■SPECIAL BOOK 읽기는 힘들어도 뒷맛은 개운

서울대 불문과 교수이자 소설가인 이인성씨(46)가 창작집으로 10년만에 ‘강 어귀에 섬 하나’를 상재했다는 소식은 문단 한 구석을 우렁우렁 울리는, ‘볼륨이 큰’ 뉴스다. 소설깨나 읽었다는 독자들은 일찌감치 그의 새 창작집 출간 소식에 밑줄을 쳐놓고 책방으로 달려갈 채비를 하고 있을 터이다.

의식의 낯선 전개와 실험적 구성으로 웬만한 긴장과 인내 없이는 읽어내기 어려운 것이 그의 소설. 어찌 보면 ‘많이, 널리’ 읽히기는 애초에 ‘틀려버린’ 작품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 ‘낯섦과 어려움’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인 글읽기’를 요구하면서 이인성 소설만의 마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시인 황지우의 말처럼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힘들게 쓰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힘들게 읽게끔 만듦으로써 독자를 ‘자율적 위치’에 세우는 것”이다.

‘강 어귀에 섬 하나’에는 화자 혹은 주인공의 연령순과 나란히 7편의 중-단편이 배치돼 있다.

작중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외간 남자들의 품에 안겨드는 그녀(어머니)에게 팽팽한 긴장이 밴 애증을 느끼기도 하고(‘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 마리’ ‘무덤가의 열일곱살’), 갖가지 탈의 모습으로 현현한 인간 욕망의 알몸들과 교미를 갖는가 하면(‘강 어귀에 섬 하나’), 불륜의 당사자가 되어 ‘순수’한 ‘불륜’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지의 문제를 제3자와 대화형식으로 탐구하기도(‘순수한 불륜의 실험’) 한다. 사회와 제도에 의해 욕망을 억압당한 채 실어증에 걸려 자신의 69세에 벌어질 사랑을 상상하는 이야기(‘마지막 연애의 사랑’)로 작품집은 맺어진다.

작중 화자가 ‘나’와 ‘그’로 해체돼 이원화된 서로를 들여다보거나 넘나드는 화자의 의식세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죽박죽된 이인성의 소설세계는 여전히 낯설다는 인상이다. 작가는 한술 더떠 몇가지 형식적인 실험도 새로 시도했다. 한 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글을 아예 활자의 좌우를 뒤바꾸어 실어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고(‘문밖의 바람’), 문장 중간의 엉뚱한 곳에서 불쑥 행갈이해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강 어귀에 섬 하나’).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온통 어렵기만 하고 ‘재미’라는 미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힘들 것을 각오하고 기꺼이 ‘자율적 위치’에서 책읽기를 시도하고자 하는 적극적 독자들은 그의 책 구석구석에서 의외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일단 사물과 상황, 그리고 인물의 의식세계를 세심하게 더듬어 표현해내는 작가의 문체가 독특한 읽는 맛을 선사한다. 귀찮을 정도로 쉼표가 빈발하는 문장이나, 마침표 하나 없이 반쪽씩이나 줄줄이 문장이 이어지는 대목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중을 짚어내는 맛도 별다르다. ‘순수한 불륜의 실험’에서 시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작품명이라며 ‘낯선 공간 속으로’ ‘한없이 거친 숨결’ ‘미쳐버리기 싫은, 미칠 수밖에 없는’ 등의 제목을 읊조리는 대목(이는 이인성 자신의 전작 ‘ 낯선 시간 속으로’ ‘한없이 낮은 숨결’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패러디한 것이다)에서는 작가의 시니컬한 유머마저 읽혀져 읽는 이로 하여금 웃음짓게 한다.

읽기는 고단하지만, 다 읽고 나면 명치가 뻐근할 만큼 깊은 인상을 받을 책이다.

이인성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300쪽/ 7000원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