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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르포 / 쪽방에 사는 사람들
0.7평에 사는 ‘어둠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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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힐튼호텔 뒤편 남대문로5가 구상봉씨(59)의 집은 0.7평이다. 3월23일 오후 그의 집을 방문했다. 합판으로 된 방문이 열리자 맞은편 벽에 짜놓은 나무진열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코펠냄비며 휴대용 가스버너, 숟가락 몇 개가 있었다. 다른 두 벽과 천장은 옷들로 빼곡해 방이 마치 세탁소처럼 보였다. 벽지는 누런 얼룩이 졌다. 바닥엔 이부자리와 고물TV, 전기밥솥, 라면 빈 봉지가 있었다. 도저히 방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이 협소했다. 가로 세로 20cm의 창문은 천장이 있는 건물 내부로 나 있었다. 백열등을 켜지 않으면 대낮에도 깜깜하다. 화장실은 다른 6개 방의 세입자들과 같이 쓰고 작은 마당의 수도꼭지 하나가 세면장 겸 개수대, 세탁장이었다. 방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와 화장실 악취로 눈이 시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수돗물에 설탕 풀어 ‘한 끼’ 해결 구상봉씨는 98년까지 건설현장에서 시멘트와 물을 섞는 일을 했다. 그러다 다리가 당겨서 허리도 못펴게 됐다. ‘30년 삽질’의 결과였다. 지금은 일은 고사하고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99년엔 공공근로사업을 하며 1년을 보냈다. 공공근로에서 탈락한 올 들어 돈이 마르기 시작했다. 구청의 취로사업마저 못하면 그는 월세 8만원짜리 이 방에서 쫓겨날 처지다. 갖고 있는 현금은 나무진열장 위의 100원짜리와 10원짜리 동전 몇 개가 전부. 구씨는 수돗물에 설탕을 풀었다. ‘점심’이라고 한다. 그는 영양부족으로 시력을 점점 잃고 있었다. 서울엔 종로구 창신동 돈의동, 중구 회현동, 용산구 남영동, 영등포구 영등포1동 영등포2동 등 6개 지역을 중심으로 2462개의 쪽방이 있고 하루 평균 1603명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서울시 1월말 조사). 그러나 서울시내 전체 쪽방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50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한국도시연구소 2월 ‘쪽방연구’). ‘쪽방’은 ‘원시인의 동굴’이다. 일제 때부터 있었다는 비인간적인 주거형태가 어떻게 현재까지 서울 한복판에 그 숫자,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하성규 중앙대교수(지역개발학)는 “아직도 서울엔 쪽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빈곤계층, 언제든 쪽방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잠재적 위기계층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99년 계층간 소득차는 79년 이후 최고로 벌어졌다. 한국의 소득수준 하위 20%는 매월 11만2200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통계청 조사). 하교수는 ‘서민’이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다 더 이상 못버텨 쪽방으로 꾸준히 이동하고 있다고 추론한다. ‘벤처 갑부’가 속출하는 한국사회의 다른 한편에선 ‘쪽방으로의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쪽방들은 주거환경이나 하루 숙박료(6000여원), 월세 등에서 구씨가 사는 방과 비슷하다. 서울역 주변엔 한 집에 40개까지 방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영등포에선 한 층을 상하로 구분해 방을 두 개로 만들어 놓은 ‘중이층방’이 많다. 방안에서 허리를 굽혀 생활해야 한다. 돈의동 쪽방촌은 방을 늘리기 위해 창고를 골목으로 돌출시켜 놓았다. 화장실을 방으로 개조한 곳도 있다. 가산동의 한 집은 1, 2층 30개의 쪽방에 화장실은 한 개뿐이었다. 지역에 따라 쪽방 주민들의 성향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탑골공원 주변 쪽방촌엔 노인들이, 용산의 쪽방엔 ‘퇴역’한 매춘부들이 많이 산다. 3월24일 오전 5시30분 서울역 광장. 쪽방에서 나온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10여명의 쪽방 주인들은 시골사람들을 상대로 매일 호객행위를 한다고 한다. “밤차 타고 오느라 피곤했을테니 일단 방에서 쉬고 일자리를 알아 보세요.” 노동하러 갓 상경한 사람들은 첫날만 자기 집에 잡아두면 한달이고 1년이고 장기 투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 광장 다른 한쪽에선 쪽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인력시장의 승합차에 오르고 있었다. 남대문5가 쪽방에 사는 김모씨(48)는 “서울역 쪽방엔 돈도, 배운 것도, 기술도 없이 일자리를 찾아 온 지방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쪽방 주인들 시골사람들 호객 구로공단 여공들의 애환이 서린 금천구 가산동의 쪽방촌. 가산동사무소 최용주계장은 “요즘은 ‘다중주택’이라 부른다. 주민들의 이미지쇄신운동으로 ‘벌집’ ‘가출촌’이라는 오명을 벗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이곳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쪽방주인 한형기씨). 그러나 서울의 쪽방촌에서 역동성을 찾아 보긴 힘들다. 이곳엔 ‘한 번 쪽방에 들어오면 벗어나지 못한다’는 체념이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환자, 장애인, 노인, 노동력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 가산동의 쪽방에 사는 김기봉씨(58)는 79년 고향 충남 금산에서 상경했다. 공장과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다리에 장애를 입어 일을 못하게 됐다. 그는 구청에서 매월 7만9000원을 받고 산다. 하루 한 값 이상 피는 담뱃값이 월수입의 절반에 이른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가는 것을 빼곤 그는 전화나 TV도 없는 방에서 하루종일 지낸다. 미래의 비전이 없다는 것이 그를 가장 괴롭히는 일이다. 3월23일 영등포역 철로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쪽방촌에서 평생 매춘일을 해왔다는 이모씨(58)를 만났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호객행위를 하며 살고 있다. 한 건 소개비로 5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 돈으로 방세를 댄다. 그녀는 “가끔 내가 왜 사는지 잘 모를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쪽방 주민 64명을 면접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형적인 쪽방 주민의 나이는 50대이며 저소득층 결손가정 출신이 많았다. 고졸 이하의 학력에 한 번 정도 결혼한 경험이 있지만 현재는 가족과 헤어진 채 혼자 산다. 1년 이상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68.3%, 5년 이상 거주자도 48.8%에 이른다. 직업은 건설일용직(28.6%), 앵벌이(19%), 무직(15.9%), 행상(12.7%), 식당허드렛일(6.3%), 공공근로(4.8), 취로사업(4.8) 순이다.
풍요·비참 공존 빈부격차 심각 IMF사태 후에는 가족을 이끌고 쪽방으로 온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박조균씨(45)는 건설일용 근로자였다. 병이 들어 수입이 끊기자 그는 금년 1월 세 아이를 이끌고 1.5평 쪽방으로 들어왔다. 박씨는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 교육시킬 자신이 없다. 3월23일 남대문5가 쪽방에 사는 김모씨(42)는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두 아이를 두고 공공근로사업에 나갔다. 김씨네 아이들은 요즘 또래 친구들이 다 하는 컴퓨터를 작동할 줄 모른다. 이 동네 쪽방에 사는 오모군(19) 아버지(48)는 암으로 투명중이고 어머니(46)는 행상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오군이 올해 서울대학교에 합격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일이라고 한다. 쪽방은 교육기회를 박탈함으로써 2세에게도 가난을 대물림한다. 서울시는 중구-종로구에 쪽방거주자상담센터를 개소하는 등 올해부터 쪽방거주자들에게 2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간접지원 형식이어서 액수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쪽방 거주자들은 알코올중독자가 돼 안으로 스트레스를 삭이거나 아니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영등포역 부근 역전파출소 김기정경사). 그러나 쪽방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고 복지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남대문5가 860개의 쪽방은 힐튼호텔, 연세빌딩, 제일제당빌딩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호텔에서 나온 벤처기업의 ‘골드칼라’들이 이 쪽방 골목을 지나다닌다.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같은 모습을 “첨단과 퇴행, 풍요와 비참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 빈부격차의 상징”이라고 표현한다. 서연구원은 “쪽방에 대해 ‘최저주거기준’을 정해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벽이 있고 지붕만 있다고 집은 아닙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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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떨어져 쪽방에서 나왔습니다”
쪽방은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 그러나 날씨가 따뜻해지자 이를 포기하고 노숙쪽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영등포역 쪽방촌 안에 위치한 광야교회는 노숙자들에게 교회를 개방하고 세끼 식사도 무료로 준다. 그래서 이 교회에선 이 동네 쪽방과 노숙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40평 규모의 재래식 방으로 된 이 교회엔 요즘 노숙자들이 부쩍 늘어 밤이면 100여명이 잠을 잔다. 정부지원은 전혀 없다. 이틀 전부터 난방용 기름이 떨어졌다고 한다. 3월23일 이곳에서 이모씨(35)를 만났다. 다음은 이씨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 “부산에서 전문대학을 나와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잘 됐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갑자기 죽어 충격을 받은데다 IMF사태까지 겹쳐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98년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지만 나이나 학벌 때문에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배도 타 보았지만 한일어협 이후론 월급도 제대로 못받았습니다. 부산의 부모는 외항어선을 타고 있는 줄 압니다. 돈도 떨어져 쪽방에서 나왔습니다.” 이 교회 임명희목사는 “인터넷이나 첨단붐이 불면서 낙오되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02-2636-3373).
“아프리카 난민이 따로 없어요”
가난한 소작농 집안 출신이었던 김소장은 25세 때인 65년 무작정 상경했다. 그러나 할 일이 없었다. 남산 해방촌을 돌며 밥을 구걸하는 거지가 됐다. 6개월 뒤 그는 어렵게 학교급사 자리를 얻었다. 밤에는 이발기술을 배웠다. 남대문로5가의 쪽방을 구했다. 서울에 와서 얻은 첫집이었다. 5년 뒤 그는 일용잡부로 한국은행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문서담당 정식 사서가 됐다. 그는 거지에서 7년만에 한국은행의 행원이 된 것이다. 그는 95년 은행을 나왔다. 젊은 시절의 쪽방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서울역 부근에서 ‘나사로의 집’을 열어 노숙자와 쪽방 주민들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고 옷이나 라면을 나눠줬다. 올 들어 구청은 중구쪽방상담센터의 운영을 그에게 맡겼다. 김씨만큼 이곳 쪽방 주민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는 3월22일 문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 “서울의 쪽방은 60년대 그대로입니다. 인권을 얘기한다며 외국으로 갈 것도 없습니다. 쪽방은 ‘서울 도심의 아프리카 난민촌’입니다. 576명의 주민들이 끔찍하게 살고 있죠.” 김소장은 “남은 여생을 이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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