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시의 광명업사이클센터(센터장 강진숙) 직원들이 지령 3만 호(1월 26일)를 맞는 동아일보에 아주 특별한 선물을 보내 왔다. 버려진 물건에 예술성을 더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업사이클’이란 이름에 걸맞게 읽고 난 동아일보 지면을 활용한 가방을 찍은 인증샷(사진 1)을 보내온 것이다.
도심과 떨어져 있어 매일 등기우편으로 동아일보를 받아 본다는 직원들은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지면 전체를 꼼꼼하게 보는 즐거움은 종이신문만의 매력”이라면서 “디자인 회사 할리 케이 김현정 대표에게 의뢰해 만든 이 가방에는 우리 직원들이 신문을 읽으면서 느낀 기쁨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신문으로 공부하는 청소년들, 손자와 함께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동아일보 홍보역을 자처하는 택시운전사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독자들이 카카오톡과 이메일(30000@donga.com)로 동아일보 관련 사진과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지난해 2학기 자유주제 활동 수업인 ‘뉴스로 세상 읽기’에 참가한 인천 강화중 1학년 학생들은 단체사진과 사연을 보내 왔다(사진 2). 구미숙 교사는 “인터넷만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종이신문을 읽어 가면서 뉴스를 알고 세상을 파악하게 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며 “교재로 삼은 여러 신문 중에서도 동아일보와 함께한 시간이 가장 많았다”고 소개했다.
대학 2학년생으로 기자 지망생인 이지원 씨는 동아일보를 구독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으로 동아일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구독하고 있다(사진 3). 그는 “동아일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틈틈이 접속해 속보를 확인하고 주말이면 종이신문을 펼쳐들고 한 주간 놓친 소식이 없는지 확인한다”며 “신문은 정보의 홍수 속에 심도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매체”라고 말했다.
‘직장인 3년 차’ 장대진 씨는 취업 성공 비결로 동아일보를 꼽았다. 대학에 입학하며 동아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장 씨는 “대학생이 되니 다양한 사람을 만날 일이 잦아졌고 대화 소재가 필요해 신문을 찾게 됐다”며 “어느 직종에 가든 글을 쓰고 설득할 일이 많다. 신문이 좋은 교재임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김창열 씨(76)는 매일 저녁식사를 마친 뒤 경기 용인서원초 1학년인 외손자 민시후 군을 부른다. 무릎에 앉히고 동아일보를 함께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김 씨는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한 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동아일보를 구독했다. 동아일보 정기 구독자가 된 지 약 60년. 그는 “동아일보는 날 선 비판 정신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정의로운 언론이 돼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 씨의 둘째 딸 주미 씨는 아버지와 아들의 신문 읽는 모습을 담은 ‘인증샷’을 보내며 “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시후에게 계속 동아일보를 읽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봉숙 씨(79)는 1974년 광고 탄압 시절 김상만 동아일보 사장이 보내온 감사문과 언론자유 수호 격려 메달을 들고 찍은 인증샷(사진 4)을 보내왔다. 당시 ‘10년 차 주부’였던 그는 “매일 텅 비어 있는 광고란을 대할 때마다 가슴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며 “힘없는 주부였지만 언론 수호를 위해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 몰래 박봉을 쪼개 작은 성금을 동아일보에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 밖에 “모범택시를 운전하면서 10년째 날마다 뒷좌석에 동아일보를 두고 택시에 탄 손님들이 보도록 한다”는 박성환 씨(사진 5), “도서관에 방문하는 어른들을 위해 동아일보를,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동아를 비치해 놓는다”는 이태희 담소작은도서관장, 근무하는 약국에서 틈날 때면 동아일보를 읽고 손님들이 신문을 보고 싶다고 하면 동아일보를 건넨다는 약사 최혜원 씨…. 세대를 넘나드는 동아일보 독자들의 애정은 이렇게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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