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도서출판:신간소개]

◆ 혜초스님 저희왔어요

누가 왕복 비행기표를 주면서 며칠이고 세계 일주를 해보라고 하면, 그런데 떠날 때 지닐 수 있는 돈이 단돈 10만원이라면, 과감히 길을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의 용감한 두 청년이 이 황당한 여행을 감행했다. 행시출신 개그맨 노정렬과 신출내기 탤런트 윤희석이 바로 그 주인공. 이들은 신라시대의 고승 혜초의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의 여정을 따라 인도-파키스탄-이란-터키-프랑스를 거치는 89일간의 '장정'을 무사히 끝냈다. 그리곤 그 경험을 상세히 적어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3개월간 10만원이라는 무지막지한 여행경비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행담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또, 없이 떠났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가지고 떠난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없었을 여행의 참맛이 잘 그려져 있다. 그들의 고생스러운 여행길이 우리에겐 즐겁게 읽힌다. 그리고 고초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두 청년의 패기가 자못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저자 노정렬은 행시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말해주듯 신세대 연예인치고는 가방끈이 길다. 그의 학구적 스타일이 연예계 활동에 도움이 될 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진가를 발휘한다. 그가 이국적 볼거리를 보는 시각은 날카롭다. 그는 '그들의 삶'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해서 우리의 삶을 반성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흔해빠진 배낭여행 안내서나 정보제공을 주목적으로 하는 문화유적 답사기의 틀을 뛰어넘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본격적인 여행기가 되고 있다.
올해는 건국이래 가장 큰 취업대란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은 어찌할 바 모르고 좌절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봄 직하다. 지금 당장 취직이 어렵다면 좌절하지만 말고 여행 짐을 꾸려보자. 어차피 놀아야 한다면 눈을 밖으로 돌려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배낭여행이 어렵다면 10만원으로 거지여행에 도전해보자. 그도 엄두가 안난다면 일단 이 책부터 읽어보도록 하자.
임성희<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

노정렬 지음 ★ 다락원 ★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