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

지금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한창이다. 8개월전인 1998년 1월 16일 한국 영화계의 큰별이 떨어진다. ‘한국리얼리즘 영상미학의 대가’ 촬영감독 유영길. 68년도 늦깎이로 데뷔한 이후 30년간 80여편의 작품을 촬영해 온 그의 생애는 한국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형극의 길’을 걸어온 한국영화사를 잘 대변한다. 불과 8개월여 기간의 준비작업으로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이란 제목으로 고인을 기리는 유고집이 나온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은 총 6부로 구성돼 1부에선 유영길의 작품세계. 촬영미학 등을 소개했고, 2부에는 안성기 문성근 강수연 장선우 명계남등 영화배우 감독등 17인과 인터뷰를 통해 그를 조명했고, 3부에선 카메라로 못다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독한 리얼리스트의 숨결과, 작가 공지영씨의 ‘길’에 이어 촬영감독 연보 수상경력 추도사등 한국 영화사에 남긴 발자취를 정리하며 끝맺는다. 이 책의 편저자 이용관 중앙대교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실무를 담당하는 프로그래머로 “지난 8개월여 동안 30여명의 인터뷰와 고인의 숨결이 채 가시지 않은 일기, 촬영일지, 촬영관련 글, 사진자료, 평론 그리고 고인을 모델로 한 작가 공지영의 소설까지 준비해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 故 유영길촬영감독 특별전 기념 책자로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유영길감독은 군사독재에 시달렸던 한국 영화의 침체기에 유현목, 하길종등과의 작업을 통해 시대정신과 영화혼에 새롭게 눈뜨기 시작했고 80년 CBS 보도기자로 활약하면서 광주민중항쟁을 전세계에 알린 바 있으며, 80년대 중반이후로는 배창호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등 젊은 감독들과 의기투합해 '뉴 웨이브'의 등장에 산파적인 역할을 한다. 여백과 절제를 통해 영상스타일의 일관성을 지켜온 그의 화면들은 ‘열린 화면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치열한 작가의식의 산물이었으며, 그와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이 하나같이 정의하는 ‘빛을 통해 진실을 추적하고자 했던 정열의 인물’이라며 “철저한 완벽주의자이자 자상한 교육자였던 그에게서 작가적 자세와 장인정신을 배웠다” 고 회상한다. 편저자 이용관교수는 이 책을 위해 “그동안 만난 많은 영화인들이 그를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원고집필과 자료조사에 기꺼히 응해줬다”며 “어떤 이는 고인에게 품고 있던 경쟁심 이나 콤플렉스의 보따리를 풀어내며 울먹이기도 했고, 어떤 이는 애물단지처럼 간직하고 있던 애증의 실타래를 한바탕 웃음으로 고백하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이교수는 이 책을 여행하는 독자들은 “한번쯤 천상병시인의 ‘귀천’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 게 될 것이다”이라며 “너무나 인간적인 영화인이었음을, 그의 삶은 치열했으되, 그가 남긴 화면들은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음을, 무엇보다도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이었음을…”이 라며 ‘귀천’에 바치고자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나의 풍경 속으로 꽃씨처럼 날아왔습니다 당신이 瞭然한 뿌리를 내린 그곳은 검은 필름이 흐르는 나의 혈관이었습니다 생명의 힘은 위대하여 당신은 꽃 한송이로 피어났고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꽃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무지개의 한 쪽 끝에 서서 七色으로 꿈꾸는 천상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붉은 입술 열리듯 플래시가 터지고 나의 네모난 마음은 天國의 窓을 들여다보았으니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한마리 나비로 당신의 붉은 입술이 되고 싶지만 당신이 꽃 한송이가 되는 빛의 거리는 누구의 저주입니까 그저 마음의 조리개를 열고 당신을 꽃이라 부르겠습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류시영씨가 쓴 ‘아름다운 인간 유영길’이란 제목으로 부제로 '사진사의 사 랑'이란 시가 책 표지에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유영길감독은 인하대를 중퇴하고 유현목감독의 69년작 ‘나도 인간 이 되련다’로 영화계에 입문, 한국영화 상황에 절망하여 한때 보도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80년 광주와 부마사태를 전세계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80년대 후반 배창호 박광수 장선우 이명세와 같은 뉴 웨이브 감독들과 만나 한국영화의 대 표작들을 선보인다. “좋은 구도는 없다. 나쁜 구도는 작위적인 것이다”를 유언으로 98년 1월16일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개봉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우리 곁을 떠난다. 평론집 ‘한국영화를 위한 변명(시각과 언어)’를 펴낸 편저자 이용관교수는 부산국제 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울단편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성대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 영화학과에서 영화비평, 영화미학, 편집론, 한국영화연구등을 강의하고 있다. 김진호<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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