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도서출판:신간소개]

◆ 문득 고개들어 세상 보니

"이 시대, 그래도 시를 읽는 기자 있어 다행이다" 동아일보 김화성기자의 글 모음집 '문득 고개들어 세상 보니'를 대뜸 접한 중견언론인의 첫마디다. 그렇다. 김기자는 2살짜리 진로면 진로, 그린이면 그린, 닥치는대로 쳐죽이면서 언제 시를 읽을까싶게 많은 시집을 섭렵한다. 어디 시집뿐이랴.
그의 글을 보면, 선지식들의 선문답이 떠올라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니 되레 '헛헛한' 느낌이다. 다 읽고난 마당에 정신적인 '갈증'에 시달린다. 무슨 까닭일까?
그는 '빨리빨리病'에 허천든 한국 현대사의 사회흐름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듯하다. '느리게 살고 싶다'가 어디 그만의 빈 말일까? 노새처럼 헉헉대며 일만 하는 40, 50대 '알량한' 샐러리맨들에게 따끔한 경종을 준다. '그래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어떻게 할건데?' '당신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어?' '당신의 앞,뒷자취를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봐?'
표지의 저자 근영(뒷모습)처럼, 그는 나지막하게 푸념처럼 읊조린다. 마치 넋두리처럼. 그는 이른바 '57그룹'(55년-59년 출생세대)의 '원죄'에 시달리는 듯하다. 조희연이, 강준만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필자가 알고 있기에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도 57그룹중 그리 흔치 않을성 싶다. 그런데도 그는 '황야의 늑대'를 자처한다. 울부짖는다.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가? 하여 선각자들의 삶을 꾸준히 되뇌인다. 그는 그만큼 정직하다.
그는 쓸쓸하고 슬프고 괴로운 친구에게 김지하의 시를 들려준다. "자네가 바로 꽃없이 열매맺는 무화과야'. 그는 애시당초 '무화과'인 듯 하다. 그가 '민완기자'로서만 한몫 하기엔 세상은 너무 넓기에 세상이, 책들이 그에게 자꾸 속삭인다. '이런 글을 긁어대 사람들을 왜소하게도 하고, 부끄럽게도 하고, 북돋아주기도 하라'. 그래서 그는 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잠든 꼭두새벽, 참고서 하나도 없이 둔탁하게 깎은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면서, 검은 노트에 쓴다. 세상은, 현실은, 아는 만큼 보이고 읽은 만큼 환해지는가. 후흑(厚黑)을 경계하고, 김남주의 시집을 들고, 박노해의 '아름다운 꿈'을 이야기한다.
꽃중에 제일 예쁜 꽃은 바로 '사람꽃'아니냐며 비수를 들이댄다. 대도시의 삶은 어쩌면 '예약이 끝난 죽음으로의 열차' 아니냐며, 자연을 노래하고 '인정'을 이야기한다.
인용한 시인들의 시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닌들 대수랴. 어쩌면 그렇게 맞춤맞게 그 많은 시인들의 '렌즈'를 촘촘히 박았을까?
새벽, 대모산 정상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본다. 귀 기울여보면 거대한 공장의 엔진소리가 들린다. '윙----윙'. 이제 하산하면 바쁘게 출근을 해야 하고, 우리는 큰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다람쥐 쳇바퀴' 일상을 보내야 하리라. 그리고 파김치되어 무교동에서, 청진동에서, 너와 내가 '한 개의 섬'인줄 뻔히 알면서 '톡, 톡' 술잔을 털어넣어야 하리라.
열심히 산다. 우리는. 이 시대 중년의 샐러리맨들이여, 그는 어깨를 두드린다. 그의 우주론적인 '똥철학'으로 점잖게. "잘 먹고 잘 살아라"
독특한 이름의 신생 출판사 '박가서·장'의 렌즈총서로 나왔다. 그들말로 '렌즈총서'는 '비판력의 렌즈' '상상력의 렌즈'를 지향한댄다. 혼탁한 렌즈는 눈을 망가뜨리고, 자칫하면 세상까지 망가뜨리지만, 정돈된 렌즈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부지런히 연마기를 들이밀 것이라고 한다. 기대해보자.
최영록<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

김화성 지음 ★ 박가서 장 ★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