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정보 과학 "여기는 평양, 탱크가 가고 있다"

북한과 일본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북한과의 치열한 생존 경쟁, 그리고 일본한테는 죽어도 질 수 없다는 오기 때문에 한국은 IMF 관리체제로 전락한 지금도 국가 GDP(국내 총생산) 순위로는 세계 14위를 기록하는 녹록찮은 국가가 된 것이다.”

지난해 8월31일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다고 자랑했을 때, 국민은 도대체 우리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답답해 했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도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로 전환될 수 있는 대포동 1호를 개발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지적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국익 때문에 다 밝힐 수는 없다’면서 위와 같은 답변으로 대신한다. 눈 밝은 독자라면 먼저 인공위성을 만든 것은 북한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기 6년 전인 92년 8월11일 우리는 ‘우리별 1호’를 쏘아올렸다. 우리별 1호는 한국과학기술원이 영국 서리 대학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때문에 “순수 우리 기술이 아니다”며 ‘남의 별’ 시비가 일어났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끼리 만들어 본 것이 우리별 2호인데, 이 위성은 93년 9월26일 발사되었다.

가로 세로 6.6m 물체 찍을 수 있어

어느 나라든 최초의 인공위성은 조악했다. 58년 1월31일 미국이 쏘아 올린 세계 최초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 는 8.5kg짜리 쇳덩어리였다. 이 쇳덩어리에는 지구 궤도를 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일정 주파수를 발신하는 송신 장치만 겨우 설치했었다. 우주공학이 발전한 70년 2월11일 일본이 처음 발사한 인공위성의 무게도 23kg에 불과했다.

이와 유사한 것이 광명성 1호다. 광명성 1호는 북한 주장대로 27MHz의 전파만 쏘는 20kg 정도(농구공 크기)의 쇳덩어리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북한은 광명성 1호를 북한 인민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로동신문’은 ‘황해도에 사는 한 주민이 밤하늘을 보다가 광명성 1호를 발견하고 너무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는 허무맹랑한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우주사령부는 인공위성이든 별똥별이든 지구 궤도를 떠도는 모든 물체를 추적한다. 엄청난 과학 장비를 갖추고 있는 우주사령부는 북한 주민이 맨눈으로 보았다는 광명성 1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광명성 1호는 지구 궤도를 조금 돌다 추락해 대기권에서 타버렸을 것이다’였다.

하지만 48kg짜리 우리별 1, 2호는 지금도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우리별 1호는 해상도 400m, 2호는 200m의 사진을 보내오고 있다.

해상도 200m란, 가로 세로 200m의 정사각형 물체를 사진에서는 한 점으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100kg짜리인 우리별 3호는 지난 5월26일 발사됐는데, 해상도 13.5m의 사진을 찍고 있다. 해상도 13.5m의 사진이라면 큰 물체의 윤곽은 표현할 수가 있다. 위성을 띄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남의 나라를 엿보는 것이므로, 해상도 13.5m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세계 주요 상업위성의 무게는 대개 900kg 정도다. 오는 11월 말, 한국은 우리별 수준을 뛰어넘는 고급 위성 보유 국가로 변모한다. 그동안 한국항공우주연구소(항우연)에서 제작해 온 800kg짜리 인공위성 ‘아리랑 1호’를 발사하기 때문이다. 아리랑 1호는 해상도 6.6m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정도의 사진으로는 북한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군사 이동, 작황, 공장 가동 정도, 수해 상황 등을 손금 보듯이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필름제조사인 코닥은 상업위성이 찍은 사진을 받아 원하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스페이스 이미징’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스페이스 이미징사는 항우연과 아리랑 1호가 찍은 사진을 공급받아 판매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상도 1m의 위성 사진이 판매되는 세상인데, 해상도 6.6m의 사진을 찾는 고객이 있겠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6.6m의 사진은 값이 싸기 때문에 의외로 찾는 고객이 적지 않다.

아리랑 1호는 물론 우리 위성이지만,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별 1호처럼 미국의 유명한 인공위성 제작사인 TRW사의 기술을 빌렸다. TRW사는 해상도 23cm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의 군사위성 KH`-`14를 만든 회사다. 항우연은 TRW사에 아리랑 1호를 맡긴 뒤, 기술진을 TRW사로 보내 설계에서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게 했다. 항우연 기술진은 도제(徒弟)처럼 TRW사 기술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현장학습을 통해 기술을 배웠다.

상업위성 분야 북한보다 한수 위

TRW사 측으로서는 한국이 주문한 인공위성을 만드는 데 한국 기술자의 손을 빌리니 그만큼 인건비가 절약된다. 반면 한국은 정식으로 기술을 이전받는 것보다 훨씬 싼 방법으로 위성 제작술을 배울 수 있다. 이처럼 아리랑 1호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공동 개발’로 분류된다.

아리랑1호 발사에 성공하면 항우연은 곧바로 해상도 1m의 사진을 찍는 ‘아리랑 2호’ 제작에 착수해, 3년 후쯤 발사한다. 해상도 1m는 말만 상업위성 사진이지 사실은 군사위성 사진과 다를 바 없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군사위성의 사진 해상도가 1 m였다. 아리랑 2호는 항우연이 주도하고 필요할 때만 외국 기술자를 참여시키기 때문에 ‘(한국)주도 개발’로 분류된다. 항우연은 아리랑 2호부터는 제값을 받고 위성 사진을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반인들은 지난 8월 발사된 무궁화 3호와 아리랑 1호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무궁화 위성은 위성방송이나 위성전화를 이용할 때 사용되는 방송-통신위성이고, 아리랑 위성은 사진을 찍는 관측위성(상업위성)이다. 방송-통신위성은 지상에서 보았을 때 언제나 똑같은 위치에 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위성 안테나를 맞추어 방송을 받아 보고 통신을 할 수가 있다. 또 이 위성은 넓은 지역을 상대로 전파를 쏘아야 하기 때문에 3만7000여km라는 높은 고도에 떠 있어야 한다.

아리랑 1호는 지구를 남북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공전하며 지구 곳곳을 촬영한다. 정밀한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이므로, 대개 400∼900km대의 저고도에서 공전한다. 현재 북한은 방송-통신 위성을 갖고 있지 않고, 광명성 1호도 추락했으므로 상업위성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위성 분야에서는 한국이 훨씬 앞서 있는 것이다.

저궤도 위성기술 日보다 앞설 수도

그러나 발사체(로켓) 개발 분야에서는 북한이 훨씬 앞서 있다. 북한은 대포동 1호로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지만, 한국은 다른 나라의 발사체를 이용했다. 프랑스의 아리안이나 인도의 PSLV, 미국의 델타 로켓을 이용해 우리별과 무궁화를 쏘아 올렸다. 아리랑 1호 또한 미국 오비탈 사의 ‘토로스’ 로켓으로 쏘아 올린다. 한국이 발사체 분야에서 뒤지게 된 것은 ‘대미 미사일 보장 서한’ 때문이다. 이 서한을 통해 한국은 ‘현무’ 미사일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는 조건으로 180km 이상을 비행하는 어떠한 로켓도 개발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해야 한다. 항우연에서는 MTCR 가입을 전제로 한국형 로켓 KSR(Korea Survey Rocket·한국관측로켓)를 개발해 오고 있다. KSR 하나로는 힘이 약해서 인공위성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릴 수 없지만, 3∼4단으로 연결하면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다. 여러 개의 KSR를 연결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발사체를 KSLV라고 한다. KSLV는 아리랑 위성처럼 저궤도에 올라가는 인공위성을 발사시키는 발사체인데, 항우연은 KSLV로 세계 저궤도 위성 발사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항우연이 저고도 위성 발사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것은 방송-통신 위성 같은 정지 궤도의 고고도 위성 발사와 달리 시장이 넓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러시아 등의 발사체는 대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리던 로켓을 전용한 것이라, 고고도 위성 발사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해도 저궤도 위성 발사에는 취약하다. 후발 주자인 일본 역시 고고도 위성을 쏘는 발사체로 H2 등을 개발해 왔다.

또 이동전화사업이 번창하면서 IMT2000 등 저궤도 위성을 이용한 이동전화 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KSLV를 개발하기만 하면, 세계 저궤도 위성 발사 사업을 선점할 수가 있다.

KSLV 개발이 성공해 2005년부터 흑자 사업이 된다면, 한국은 군사용 로켓 개발에만 몰두해 온 북한이나 고고도 위성 발사 로켓 개발에 진력하다 최근에서야 저궤도 위성 시장 규모에 눈을 뜨고 저궤도 위성 발사체 개발을 시작한 일본을 앞서는 ‘신나는 역전승’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전승은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던 북한과 일본이라는 아주 껄끄러운 상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한 과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공포와 4강에 둘러 싸여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우리는 항상 약소국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한 처지가 우리를 각성시키고 우리를 뛰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곁에 북한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같은 걸끄러운 나라가 있다는 것은 불운이 아니라 행운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