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피플 웃음보따리 푼 '뺑코 아저씨'

방송이 아닌 사석에서 처음 그를 만난 사람들은 당황하기 일쑤다. TV에서 늘 푸근한 웃음을 주는 그이기에 즐거운 만남을 기대하지만, 막상 함께 마주한 자리에서는 의외로 쌀쌀맞은 편이다. 괜히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는 식의 말을 건넸다가는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개그맨 이홍렬(45)은 그런 사람이다. ‘뺑코 아저씨’라는 재미난 별명을 갖고 늦은 밤 부담없는 웃음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아온 사람이지만 낯가림이 심하다. 하지만 그의 낯가림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개그맨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생활인이고 사회인입니다. 아무리 방송에서 웃기고 멍청한 개그맨이라도 밖에서 만날 때는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사회적인 예절과 예의가 있어야죠.”

9월5일 그는 1년 반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10월11일부터 재개한 SBS ‘이홍렬쇼’의 진행을 맡는 것으로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98년 초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까지 100회를 진행하며 애착을 가졌던 토크쇼. 하지만 1년 반이라는 공백 동안 다양한 형태의 토크쇼들이 태어나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떤 새로운 웃음으로 지난 18개월간의 공백을 채울 것인가.

“새로운 변화요? 글쎄요. 꼭 변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할까요? 마치 100회 마지막 방송이 어제 있었던 것처럼 변함없고 친숙한 모습으로 시청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생경한 변화보다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가 활동 재개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귀국을 앞두고 그는 밤마다 ‘형장에 끌려가기 전 사면 전화를 기다리는 사형수’같은 초조함과 중압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괜히 18개월의 공백을 만회하겠다고 어설픈 무리수나 ‘오바’를 하다가는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것마저도 잃어버린다는 걸 그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1년 반의 미국생활 동안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UC 얼바인대’에서 어학 연수를 받았다. 한창 인기있을 때 모든 것 다 던지고 떠나 시작한 공부였기에 이를 악물고 현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재혁, 재준 두 아들 틈에서 매일 4, 5시간씩 영어 숙제와 씨름하며 살았다.

이홍렬은 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승부수를 던졌다. 78년 고졸의 학력으로 대학 출신이 즐비하던 당시 개그계에 겁없이 도전했고, 87년 34세의 나이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으며, 91년에는 새로운 것을 느끼고 싶다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년 반 배웠다고 얼마나 유창하겠어요. 그보다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삶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방송 때문에 소홀했던 가족과 가까워질 수 있던 것에 의미가 깊습니다.”

현재 그는 동부 이촌동의 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부인 박인규씨와 두 아들은 아직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