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SPECIAL SPORTS 말 많고 탈 많은 중계방송

길게 롱패스”, “뒤로 빽패스”. 축구중계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가끔 뱉어내는 비문법적인 말이다.

70년대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있을 때 어느 해설자가 “지금이 야마”라고 말해 빈축을 산 일이 있다. “볼의 하반신을 차면 뜨게 돼 있다”고 말한 축구해설자도 있다.

스포츠중계방송 아나운서는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농구 한 경기는 대개 한시간 반, 야구는 평균 세시간 이상, 축구는 두시간쯤 걸리는데 아나운서는 그 ‘긴 시간’을 메워야 한다.

양뿐만 아니라 속도도 문제다. 뉴스를 할 때 말의 속도는 1분에 보통 200∼250자. 이 정도도 일반인들보다 빠른 편이지만 스포츠중계는 400자 내외가 된다. 따라서 무슨 종목이든 한 번의 중계방송에 아나운서는 평균 4만8000자 안팎을 지껄어야 한다.

스포츠중계엔 각본이나 대본이 없다. 더구나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면 아나운서도 흥분하게 되고 그러면 정리된 말, 바른 말이 어려워진다. 아무리 언어훈련이 잘된 전문 방송인이라도 말이다.

아시아경기대회나 올림픽 등 큰 대회 때마다 방송계에서 단골로 준비 소홀이니, 전문성 결여니 하며 구설수에 오르는 사람도 바로 중계 아나운서다. “규칙도, 경기진행 방법도 잘 모른다” “표현이 몇 년 전부터 똑같다” “선수들 이름도 너무 자주 틀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화면과 겹치는 장황한 상황설명, 끊임없이 이어지는 쓸데없는 말에 짜증스럽다는 비난도 있다. 이런 비판을 들으면 아나운서들은 나름대로 변명해 보기도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골키퍼가 차는 것을 모두 골킥이라 하고 시스템과 전술을 동의어로 쓰는 아나운서도 있다. 축구나 하키, 핸드볼, 농구 등 선수도 많고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에서는 더러 선수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단어나 어휘 선택에 문제점을 드러내는 스포츠캐스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중계방송 아나운서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비성 비판이다.

방송국엔 방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심의실이 있다. 이곳은 프로그램을 철저히 분석, 검토한다. 특히 스포츠중계방송에서는 아나운서가 주로 심의대상이 된다.

10여년 전의 일이다. 유난히도 아나운서만을 꼬집는 심의위원이 있었다. 마라톤 중계방송에서 “가로수를 끼고 달라는 선두주자”라고 한 아나운서가 말했다. 그러자 심의위원은 “가로수를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는 말이냐”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양팀 응원단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실내링크”라고 하자 “그러면 얼음판이 녹을텐데”라고 제동을 걸었다.

축구경기 중계방송 때 “선수들이 연습을 열심히 한 탓인지 손발이 잘 맞는다”고 한 아나운서가 칭찬했다. “축구에서 손을 사용하는 것은 반칙이다.” 심의위원이 외쳤다. 그는 부적절한 말장난이라며 규칙까지 들먹이는 것이었다.

아나운서들은 우리 언어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과 긍지를 갖고 정확한 발음, 적절한 묘사, 표준어 보급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런데 사사건건 시비를 거니 언어구사가 자유롭지 못하고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생방송에서 ‘고 육영수여사의 묘소’를 ‘육영수 묘소’라고 말한 뒤 크게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필자는 그 당시 중계방송하는 것도 퍽이나 부담스러웠다.

서기원/ 스포츠 전문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