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5호]

■SPECIAL MOVIE '음모론'영화 "으악, 함정에 걸렸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TV에서 믿을 수 없이 끔찍하고 공포스런 장면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밤 사이에 테러 학살 전쟁 살인 지진 등의 사건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잠깐 공포에 떨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TV가 그 사건의 원인이나 범인의 범행 동기를 설명해 줌으로써 당신은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원인이 TV에서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데 있고 진짜 테러범이 바로 맘씨좋은 이웃 아저씨라면?

영화 ‘함정’(10월16일 개봉)은 바로 그런 의문에서 시작한다. 팀 로빈스와 제프 브리지스가 주연하는 ‘함정’은 세기말에 붐을 이루고 있는 ‘음모 이론’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대학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강의를 하는 마이클(제프 브리지스)은 집 앞에서 팔을 다친 소년을 발견한다. 그는 바로 앞집의 아이였다. 마이클은 이웃의 얼굴도 모르는 자신을 책망하며 아이의 부모인 올리버(팀 로빈스)와 세릴(조안 쿠잭) 부부와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곧 마이클은 올리버에게 뭔가 수상쩍은 점이 있음을 눈치챈다. 그가 어린시절과 건축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이웃을 의심하는 마이클이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고 믿는다. FBI 요원이었던 마이클의 부인이 정부의 잘못된 정보로 죽었기 때문에 마이클이 ‘음모 이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끌어들임으로써 공포감과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영화의 중요 모티브가 되는 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 폭파 사건이, 보도된 것과는 달리 ‘단독범’이 아니라 연방 정부에 대해 증오심을 가진 조직적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의 FBI에 대한 테러를 교수인 마이클의 행위로 마무리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 유너바머’ 사건과 교묘히 섞어놓았다. 할리우드 최고의 지성파 감독이자 배우인 팀 로빈스와 묵직한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 상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어지는 처음 20분과 마지막 20분은 감탄을 자아낸다.

‘X-파일’로 우리나라에 상륙한 ‘음모이론’ 영화는 ‘JFK’ ‘왝더독’ ‘맨 인 블랙’ ‘트루먼쇼’ ‘컨스피러시’ 등 코믹과 스릴러의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서 이같은 음모적 시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외계인 해부필름으로 잘 알려진 ‘로스웰 사건’(1947)과 케네디 암살사건이다. 미국인들이 국가에 대해 커다란 신뢰를 갖고 있었던 만큼 ‘음모이론’ 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정치권의 권모술수와 충격적 사건들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어 요즘은 웬만한 사건이 터졌다 하면 PC통신에 ‘음모 이론’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진다.

‘함정’ 외에 10월23일 개봉되는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클린턴의 지퍼게이트를 ‘음모 이론’으로 그린 영화이고, 같은 날 개봉될 ‘큐브’는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직사각형 방에 갖힌 평범한 사람들이 내부의 악으로 파멸해 가는 이야기다. ‘배후’ 가 외계인인지, 국가안전국인지조차 알 수 없는 ‘큐브’는 갈 데까지 간 ‘음모 이론’이다.

표면적으로 이런 영화들은 ‘묻지마, 다쳐’라고 말하지만 때론 인간의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음모 이론’은 그 인간적 한계에 대한 반론이기도 한 것이다.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