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동아일보[동아일보매거진:주간동아 204호]

■SPECIAL PLAY & ARTS 인류 미래 '비극'으로 끝나나

연희(演戱)의 상상력이란 그것이 행해지는 공간의 특성에 따라 폭과 깊이가 확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 ‘유’가 서울연극제 공식초청작으로 공연하는 ‘철안붓다’의 연희 배경으로 무대가 아닌 성수대교 공사현장을 택한 것은, 관객들에게 또다른 극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탁월한 선택’이라 하겠다.

극단 유는 미래사회 인류의 종말을 다룬 작품 분위기를 십분 살리기 위해 무대배경으로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등 ‘문명의 흔적’ 을 물색해 왔다. 그러다 이곳 성수대교확장공사 현장을 낙점,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공사장의 돌을 고르고 터를 다져 객석 1000석 규모의 야외무대를 만들어냈다.

개막 3일전 한창 막바지 연습이 진행중인 성수대교 야외무대로 찾아가 보니 무대 주변은 온통 철근 콘크리트 등 건설자재 투성이 었다. 그 속에서 배우들은 웃통을 홀랑 벗어부친 채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연기하고 있었다. 홍경인 이남희 정규수 조덕현 등 출연진들은 ‘사이버틱한 미래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파란색 보라색으로 물들이거나 뒷머리를 민 경우도 있었고, 연출자 조광화씨마저 연기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머리를 3부로 밀고 노랗게 염색했다.

‘철안붓다’는 ‘남자충동’ ‘미친 키스’ 등을 통해 386세대 연극인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조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 때는 25세기, 인간은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복제인간 ‘철안족’과 열등한 유전자의 인간들 ‘야차족’으로 나뉘어 진화한다. 이런 세상에서 닥터(유인촌 분)는 다른 인간의 생명을 희생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전생수’(前生樹)를 연구하고, 철안족들은 이 전생수를 얻기 위해 야차족들과 전쟁을 벌인다. 닥터는 자신의 죽은 아들(홍경인 분)을 회생시키기 위해 전생수를 이용하지만 철안족 안회(이남희 분)와 영혼과 육신이 뒤바뀌어 버리고, 결국 안회의 몸을 빌려 전생한 닥터의 아들은 붓다가 되어 열반함으로써 인류는 영생 대신 멸망의 길을 걷는다.

결국 인류의 미래는 ‘비극’으로 끝난다는 말인가. 조광화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할리우드 영화는 주로 ‘미래에 인류가 종말과 싸워 이기는’ 스토리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합니다. 그들은 철저히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고, 인간을 위해 만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불교사상에서는 만물에 인성이 들어있음을 강조하고, 인간도 결국 하나의 동물에 다름아니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명쾌하다. “인류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멸망과 맞닥뜨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 대해 너무 전전긍긍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다.”

이같이 메시지 자체가 다소 무겁다 보니 관객들에게 낯섦과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 점을 감안해 작가는 ‘500년 뒤 미래세계를 그린 SF’라는 형식을 취했다.

가을밤, 도심의 불빛이 떨어지는 한강변에서 관람하는 연극은 관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듯하다. 단, 가을밤은 쉬 싸늘해지므로 두터운 겉옷을 필히 들고오라고 극단측은 당부한다.

10월8일 개막해 24일까지 매일 오후 7시 1회 공연.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극단측이 마련한 셔틀버스가 공연장까지 운행된다. 버스 29, 117, 235, 716번을 타고 강원산업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보로 3분 거리.

문의：극단 유 02-3444-0651~4.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